타인에게 말 걸기
나를 불러 세우는 일이 시장에는 있다.
그녀는 새벽시장을 다니는 것으로 일상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다. 아주 가끔 그녀를 따라 새벽시장을 활보하면 돈 주고 사야 할 용기를 공짜로 얻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폴폴 날리는 삶의 먼지가 가득해 내 안에 끼인 작은 곰팡이는 별것 아니라는 이상한 위안을 주는 공간, 타인에게 말 걸기가 아무렇지 않은 장소는 바로 이곳이다.
그녀는 타인에 대한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 버린다. 친해야지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남편 흉이라든지 며느리 식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엎어지는 컵 안의 물처럼 단번에 쏟아낸다.
"저 집은 꼭 할마씨 라고 불러서 나는 저 집 안가. 이왕지사 좋은 말, 아짐매라고 부르는 집을 가지."
시장바구니를 들고 따라가다가 쿠욱, 웃음이 터지는 걸 참으며 우리는 이름뿐 아니라 다양한 호칭으로 타인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은희경 식으로 말하자면 그래서 관계에는 호칭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무작위로 인식될 때 우리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룹핑되는 호칭은 가끔 이렇게 위장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뻔뻔하고도 솔직한 위장이 상대방을 사로잡기도 한다는 것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시장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음이 세수를 하고 나온 느낌, 툴툴 털어버린 것들 때문에 가벼워지는 걸까.
시장에서는 이름을 대지 않아도 된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후드티에 슬리퍼를 끌어도 나는 새댁이라는 그룹핑에 들어가 있으니.
의미 없는 그런 접촉조차도 우리에게 어떤 힘이 되는 현상, 시장에서 날뛰는 건 장어만이 아니다. 사람도 펄펄 날뛰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건 타인을 불러 세우는 일이다.
<타인에게 말 걸기>가 나에게 거는 말
은희경 작가의 <타인에게 말 걸기>는 관계 맺기에 대한 두 가지의 태도가 등장한다. 그녀는 나와 타인의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살며, 타인에게 냉대했던 나는 관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깊이 관계하지 못한 단조로운 생활을 산다.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중략)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타인에게 말 걸기의 또 다른 용어는 인간의 사회화다. 타인의 삶에 끼어들고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타인의 요구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회화를 지휘하는 변연계는 눈을 통해 직관적으로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녀의 눈빛, 뜨고 있다기보다는 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크고 깊숙한 눈이 그랬다. 은희경 작가는 그녀의 눈빛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녀의 자궁을 상상했다.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해 버리는 그녀의 어쩔 수 없는 태도는 깊숙한 눈으로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나를 향해 강한 펀치를 날린다.
"난 네가 좋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이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중략)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그렇게 냉정하게 살 수 있는 거지? 사실은 너도 겁이 나서 피해버리는 거 아니야?
겁이 나서 미리 피해 버리는 것, 그건 어떤 일과 맞서는 것보다는 비겁한 일이라는 그녀의 질문은 깊숙한 눈빛에서 나온다. 깊숙한 눈빛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머물렀던 자궁을 연상시키고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졌던 본능임을 버퍼링 시키는 이야기다.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은희경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중에서
나는 악동과 같은 어긋남을 갖고 소설을 쓰고 싶다. 어리다는 것은 인간의 본래 모습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다니기도 하면서 종일 숲을 쏘다니고 싶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은희경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은희경 작가의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타인에게 말 걸기>를 읽으며 작가 빌런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데 불편했다. 철없고 발칙하며 어디로든 날아가는 무작위의 화살처럼 뻐근하게 나를 건드렸다.
그녀의 소설을 매만지며 나는 악동과 너무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