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이모도 아닌 나를 이모라고 너무 친숙하게 부른 아이가 있었다. 은경이었다. 그 애가 아는 내 또래 여자들은 그 아이에게 모두 이모였다. 턱이 가느다란 스물 한 살 은경이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오토바이를 타다 다쳤다면 다리 한쪽을 절고 있었다. 어떡하다 다쳤냐고 안쓰럽게 묻자 한쪽 보조개가 들어가는 엷은 미소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씨발, 고추 훔쳐가... 도망가는데 주인 새끼가 끝까지 따라오잖아요. 커브길에서 갑자기 확 틀다가 넘어졌어요."
"도둑질은 나쁜 일이잖아."
"에이, 괜찮아요. 그런 하우스에 고추 한 푸대가 뭐 대수라고. 근데 그 씨발새끼가 죽자살자 따라오는 바람에... 재수가 좆나게 없었어요."
콧등을 만지작 거리는 은경의 손톱에는 꼬질꼬질한 때가 끼여 있었다. 으~~앙하고 태어난 게 아니라
씨~발하며 엄마 뱃속을 나왔는지 은경이 달고 다니는 욕은 거친게 아니라 이상하게 귀에 쏙쏙 박히는 정감이 있었다. 자기 인생의 추임새 같은 것이랄까.
읍내, 24시간 하는 콩나물 해장국집 서빙을 은경이에게 소개했다. 자리를 잡아가며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 시작하자 은경은, 어느 때는 친구를, 또 어느 때는 동거하는 남자 친구의 친구를, 또 어떤 때는 우연히 알게 된 딱한 또래들을 내게 데리고 왔다.
"이모!"
어찌나 반갑고 큰 목소리로 이모라고 불러대는지 사무실 사람들이 일제히 깜짝 놀라며 문 쪽을 쳐다봤다.
"어, 왔어. 좀 살살 불러."
"뭐 어때요?"
내 옆 의자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뒤면 어김없이 또 하나의 사람이 슬그머니 옆에 섰다. 누구냐고 눈으로 물으면 은경이 또 콧등을 만지작 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이모는 나보다 많이 알잖아요. 애도 일자리 하나만 소개해줘요. 아시잖아요, 이모가 부탁하면 사람들이 더 잘 써주잖아요."
다섯 명째였다. 은경이 말소리가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리므로 일단은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둘은 병아리처럼 쪼르르 나를 따라 들어왔다.
"야, 벌써 몇 명째야?"
"이모! 다들 캡이야! 캡!"
그 애의 말에 따르자면 시청에 근무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서 이모라고 하면 그다음은 뭔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최저시급보다 적게 주는 사장들이 임금을 딱딱 맞추어주고 일한 시간을 뻑하면 깎아내리던 사람들이 그런 짓을 안 한다는 거였다. 가끔 하는 실수도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는 일이 생겼고 그런 변화를 은경은 내 덕이라고 믿었다.
"이모! 그런 게 바로 빽이에요! 이모 빽좀 씁시다!"
얼마나 기대 때가 없으면 나를 빽으로 쓸까.
그 뒤로도 은경이는 내가 주변에 부탁해야 하는 일, 자살한 친구의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는 일, 남자 친구의 남동생이 일하다 다쳐서 병원비를 지원받는 따위의 볼 일을 가지고 또 친근하다 못해 너무 친숙하게 이모라고 부르며 나를 찾아왔다. 대부분의 것은 그렇게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장 새끼가 병원비를 못 대준데요. 좆나게 나쁜 새끼예요!"
"아니 은경아, 말 좀 이쁘게 하자."
"욕먹을 놈한테는 욕 해야죠!"
그런데 희한했다.
은경이가 가고 난 뒤 상담실에 앉아 나는 은경이 뱉은 욕들을 가끔 빈 종이에 적곤 했다. 씨발새끼, 진짜 나쁜 새끼..... 은경이 내뱉은 억양들이 악센트를 달고 내 입에서 퉁겨져 나왔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퍼부어주고 싶은 말들이었다.
은경의 억양을 따라 한번 훑고 나면 간신히 참았던 오줌을 비운 것 같은 개운함이 왔다. 욕도 힘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은경이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서빙을 하던 은경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과장의 결재판이 한바탕 책상을 친 뒤 침묵이 무겁게 깔려서 직원들 대부분이 컴퓨터에만 눈을 박고 있었다. 그때 은경이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이모! 이 씨발새끼 가요~!!! 성난다고 집어던지면 어떡하냐고! 아, 졸라 열 받네. 그런 개세끼는 인간이 덜 되었어요!"
앉은뱅이 의자에 뒤돌아 앉아 있는 과장의 뒤통수로 은경이 들으라는 듯한 욕설이 범람했다. 그것은 정확히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욕은 너무 찰지고 아귀가 딱딱 맞았다.
"니미 씨팔, 누구는 뭐 못하고 싶어 못하나? 다 이유가 있는 거지. 누구는 입이 없어 말 못 하고 있나? 좇같이."
눈이 치켜 올라간 과장이 뒤를 돌아볼 때 이주사가 벌떡 일어나 은경이를 급히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지만 질퍽하게 퍼진 욕 찌꺼기는 이미 어디론가 꽂히고 있었다. 직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메신저 창에는 이런 말들이 바삐 오고 갔다.
"아이고, 속이 시원하다! 은경이 짱!"
"조금 더 하게 내버려 두지. 이주사님도 차암.."
"오늘 무조건 점심 은경이 있는 콩나물해장국이다."
그날 이후 은경이가 이모하고 사무실로 들어서면 과장은 못 볼걸 본 것처럼 서둘러 사무실을 나가버렸고 직원들은 커피에 기념품까지 한가득 은경을 챙겼다.
동거하는 남자 친구를 따라 이 도시를 떠난 은경의 생동하는 욕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뒤로 나에게 그렇게 친근하게 이모라고 불렀던 아이는 없었다. 나를 빽으로 삼는 아이도, 그처럼 욕설을 욕 아닌 것처럼 내뱉는 아이도 없었다. 운전하며 가끔 나도 은경이 처럼 욕을 해보는 것은 의외로 감정을 털어버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은경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욕먹을 놈은 욕먹어도 돼요."
이토록 멋들어지게 이야기의 도입부를 장악한 소설은 보지 못했다. 비상구를 나타내는 화살표와 절묘하게 큐피드의 호흡을 끌어다 쓰다니....
그 여자애 배꼽 밑에는 화살 문신이 있다. 그걸 새길 때보다는 뱃살이 붙었는지 이제 그 문신은 화살이라기보다는 밧줄 모양이다. 화살촉 부분도 초기의 날카로움을 잊고 끝이 구부러져버렸다. 그런 화살이라면 아무도 못 죽일 것이다. 화살이든 밧줄이든 혀끝으로 그 부분을 핥을 때면 아주 쌉쌀한 맛이 난다.
<비상구>는 인생에 가래 뱉는 어긋난 청춘들을 떠오르게 한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안전한 비상구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상구는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나 혹은 어떤 경제적인 보살핌 일수 있고 우리는 대부분 그런 비상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묻는다, 당신에게 그런 비상구가 없었다면 당신은 우현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안전지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을 살아 낼 수 있었을까.
그녀의 비상구에선 나물 냄새가 난다. 아주 어릴 적에 봄이 되면 된장찌개에서 나던 그런 냄새다. 그러니까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김영하/ 창비
허구적이나 비상구에 나오는 우현 같은 놈이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대단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리얼리티가 오랫동안 가슴을
멍들이는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