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한 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키친

by 양아치우먼



7월, 여름 한가운데 홍길동 중고서점을 발견했다. 서울 출장길이었다. 이 책방을 발견한 첫날은 연인과 아쉬운 작별을 하는 것처럼 길게 뒤로 목이 빠지도록 쳐다보며 하는 수 없이 지나야 했다. 기차 시간이 30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고, 두 번째는 아예 작정을 하고 시간을 내 들렀다.


이전에 프랜차이즈 커피점이었는지 지난 시간의

간판을 그대로 입은 채 책장이 즐비했다.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땀을 삐죽삐죽 흘리며 2시간 가까이를 돌다가 아주 소중한 보석을 골라 잡았다.


전상국 <우상의 눈물>, 김주영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과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 씨>를 샀다. 책값을 다 합해야 13000원 정도였다. 일명 득템인셈이다. 이게 바로 개꿀이지, 그냥 좋아 웃음이 나왔다.



그런 뒤 즐겨 듣는 팟캐스트 <김겨울의 북클럽>에서 키친이 등장했다.

아, 키친.

진주문고에서 책을 사지 못해 주인 눈치를 보며

읽어야 했던 키친, 다시 읽고 싶어 졌다.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도 좋을 만큼 너는 완벽한

내 것이 되어 있으니 숙독을 해도 좋으리라. 헌책의좋은 점은 지나간 시선이 남긴 흔적 때문, 연필자국을 배껴보며 볼펜을 똑딱거리며 꽂히는 문장에 과감하게 별표를 친다.


"인생이란 정말 한 번은 절망해 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 버려."


툭하면 여행 가는 친구가 있었다.

처음 여행을 갈 때는 1박 2일인데도 불구하고 큰 캐리어를 가져갔고 다음은 짊어진 배낭, 지금은 꼭 필요한 짐만 가져간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친구처럼 인생에도 그런 경험은 필요할 것이다.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뭘까.

버려야 하는 것과 버릴 수 없는 것의 간극에는 뭐가 있을까.


한 번도 입지 못한 새 옷을 결국 옷장에서 재활용품장으로 버리는데 시간만큼 좋은 비법이 없듯이 감정에도 마음에도 관계에도 <시간>이 가면 버려질 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다. 절망이 문 앞에 와 있을 땐 시간을 견디는 것이 해답일 때도 많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을 견디는 비법을 마련해 둘 일이다.




[키친]은 성장기의 청춘들에게 한 번은 권유하고

싶은 작품이다. 키친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키친의 연속 작품인 [만월]도 비슷한 톤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한다.


쉽게 사랑하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는 일회적인

사랑이 아니라 마음속에 생겨난 감정을 구별하고

헤아려보는 감촉들이 애틋하다.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색감이 약간 나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미카게와 유이치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만들어가는지. 그것은 마구 휘몰아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구별하고 짚어내는 것이다. 같은 공간이라는 상황보다 절망과 사랑을 혼돈하지 않는 뭉근한 사랑, 요즘말로 찐 사랑 이야기다.





[단편소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민음사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만월에서 에이코가 자신의 아내가 죽기 전 부탁한 파인애플 화분을 죽이고 만다.

에이코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남자에서 여장남자(게이)로 살아가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것, 키친과 만월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무엇인가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남기는 아름다운 위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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