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지 않은 채로 받아들였다

신중한 사람

by 양아치우먼



책 타기를 했다. [소설을 살다는]는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읽다가 빌려 온 단편소설집 <신중한 사람>,

소리 소문 없이 살아가고 있는 40, 50대 후반의 남자는 모두 신중한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들의 완벽했던 세계는 무엇이었는지 궁금은 하게 되었다.


<신중한 사람>은 우리를 직면하게 한다. 걷어차지 못하고 일반적인 욕망의 행렬에 나란히 선 우리들의 숙여진 고개를 내려다보게 한다. 자신의 완벽한 세계를 앞두고 가족의 욕망 앞에 신중함으로써 망가져버린 남자의 자화상이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고 현실에서 선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데서나 어디에서나.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 신중한 사람의 일부중에서



지금을 유지하는 것은 그것을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면 이것은 비겁한 신중함이다. 회피의 또 다른 면모이다. 그럼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지금을 유지하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 나는 지금의 현상 유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

나에게 일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가정은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 가치란 것, 바림직한 인정은 무엇인가?

사랑인가 행복인가. 존재인가.


그렇게 이승우식으로 되물으니 왠지 지금의 나를 탈탈 털어내야 할 것은 같은 기분이 되어 난감하다.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확 쏟아내는 기분.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당신 지금 무엇 때문에 살아, 라고 내지르는 황당한 질문을 코 앞에 둔 느낌이다. 아.....이런.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가 혹시 만들어낼지도 모를 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끔찍해하기 때문이다.



이승우 작가의 사변적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회식 때 술을 마시지 못해도 두 손으로 잔을 들었던 불쾌한 공손,상사의 심부름도 괜찮다, 이것도 능력이라며 견뎌낸 마뜩짢았던 주름, 나를 지렛대 삼아 누군가 승진했을 때 꾹 참은 울음들. 자신의 반항이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는 먼저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만 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감정의 통각.


그래야 무사했기 때문에,

별 탈없이 살 수 있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움을 감당했더라면 무사하지 않거나 큰일이 일어났을까. 되묻게 된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별 탈없이 살아도 되는 거냐고. 신중하게 혹은 매우 익숙하게. 도시의 소음과 먼지와 속도와 안하무인과 무질서 속에서 신중하게만 살아도 되는 거냐고. 신중하게 나에게 묻는다. 은근히 중독성 있는 신중함이다.



아내가 가끔 전화를 걸어오면 Y는 시끄럽고 먼지 투성이고 안하무인이고 철면피한 도시를 피해 완벽한 평화의 공간인 전원에 자신의 왕국을 꾸민 오십 대 중반 남자의 행복과 평화에 대해, 혹시 안방의 남자와 여자가 들을까 봐 신경을 쓰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흡사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단편소설]


신중한 사람/ 문학과 지성사

이승우 작가



예를 든다면 그의 소설은 이렇다

신중한 이야기를 신중하게 쓰기 위해 신중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써 내려간다. 그의 신중함은 모든 이야기의 알맹인 것처럼 신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신중함은 또 다른 신중한 문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끝)



* 민트색은 소설에서 가져온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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