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같은 운명의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사막의 달

by 양아치우먼



[사막의 달]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이 모두 존재한다.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현재), 인간의 일생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라케시스(과거),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는 아트로 포스(미래),

운명은 왜 여성과 더 친밀한가?




어떨 땐 운명이라는 말이 좋고 슬플 땐 운명이라는 말이 싫다. 슬픔이 운명이란 옷을 입으면 영영 그 옷을 벗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라디오에서 어느 작가는 운명의 힘을 믿냐는 진행자의 말에, 그렇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과학의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작가의 늘어진 말꼬리가 덜 말린 빨래처럼 꿉꿉했다.


설명은 무엇과 연관된 뜻일까?

인과관계, 납득, 이해 그런 영역일까.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혼돈하는 것은 아닐까. 알지 못하는 영역을 운명이라는 이름하에 묻어 두거나 혹은 회피하려는 건 아닐까. 운명은 우리에게 어떤 얼굴일까.



선택이 운명이 되는 순간은,

맞선을 보았던 남자가 음식점에서 신발을 도둑맞았다. 신발을 사러 시장을 쏘다니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매운 떡볶이를 남자도 좋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음 약속을 잡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매운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사실 외에 살아보니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그들 부부는 맨날 싸웠다.



아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며 지긋지긋해하는 대신 남자는 가끔 20년 전 선택을 후회했다.

그때 종업원에게 웃돈을 얹어주며 신발을 숨겨 달라고 했던 깜찍한 모의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목주름이 늘어나는 아내는 아직도 운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남자는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어이구, 지긋지긋해! 그때 그놈의 도둑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러고 살진 않을 텐데."


선생과 결혼한 친구가 스위스 베른에서 올린 사진을 보며 아내가 한탄을 할 때마다 모른 척 담배를 챙겨 아파트 앞마당으로 나오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 탓이다.


신발은 그렇게 두 마리 야수 같은 운명의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소설을 관용어로 표현하자면 여성과 운명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벗어 날 수 없는 끈질긴 힘들이 여성들을 옥죄는 느낌을 받는다.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다가 그녀가 숨겨둔 실마리들을 찾지 못해 책을 덮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그녀의 첫 소설부터를 읽기 시작했다. <사막의 달> 그녀의 처음부터를 탐독하고 싶었다. 어느 작가든 첫 작품은 또박또박 다진 글처럼 선명한 것을 드러낸다. 독자들을 속이기에 좀 순진한 구석이 있다.


[사막의 달]은 남자, 엄밀하게 말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남편의 원죄를 모두 뒤집어쓴 혜연의 슬픈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은희경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소설과도 비슷한 주제의식은 똑같이 원죄의 자리에 다소곳이 여성을 올려둔다.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불운한 운명을 상기시킨다.

[사막의 달]에는 그런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슬픔의 강을 이룬다.



산 하나가 풀렸다가 맺히기는 차라리 쉬울, 강 하나가 열렸다가 닫히기는 차라리 쉬울 그 먼 시간....

그것은 두고 갈 수 없는 내 몫의 삶일 것이었다. 손가락들이 천천히 열렸다. 성냥이 얹혀 있는 열린 손바닥 위에 햇빛이 환하게 비쳐 들었다.






[단편소설]


사막의 달

전경린 / 문학동네/

책 제목/ 염소를 모는 여자




내 글은 난마처럼 얽힌 삶의 가닥을 따르고
싶어 한다. 격정을 씻고 사람들의 공평한 상처에
입 맞추고 싶어 한다.

- 전경린 작가의 말 중에서



* 제목과 민트색 문장은 소설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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