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을 경력으로 대하는 태도
일을 경력으로 대하는 경우는 젊은 층 중에서도 스타트업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세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장년층에서 고위직 공무원이나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 직위를 차지하는 직군, 자영업에서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자기 직업에 대한 비전을 끊임없이 개발하며 직업세계를 확장하려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유형은 기업형 E에 속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일정 부분 직업에서의 성취나 의미를 찾으며 더불어 그에 따른 보상도 받기를 원한다. 개인의 욕구와 조직 욕구가 조화로우며 인정과 기업과의 성취를 함께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 일수 있다.
직장을 나오게 되면 명함은 없어지지만 커리어가 된 직무 스킬은 새로운 직업이나 전문 적인 일을 가능케 한다. 직업적으로도 생애적으로도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태도이다.
그럼에도 일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가는 태도는 찾기 쉽지 않다.
비뚤어진 현실이 우리 앞에 적나라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업은 부동의 1위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순이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대학생의 경우는 대기업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청년층이 구직시 중요하게 여기는 1순위는 급여 수준과 고용안정성, 직무의 적정성이다.
스펙 쌓기 열풍 때문에 상향 평균화된 학벌과 스펙은 청년층을 또다시 계급화시켜 버렸다.
부모님의 부에 따라 3년씩 공시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은 노량진으로 몰렸고 가난한 청년들은 대학을 포기한 채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해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었다.
청년의 79.6%가 취업 스트레스와 직장이 고민이라는 대답을 했는데 삶의 피로감을 어디서 느끼냐는 질문에 <질 낮은 식사>라고 답했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청년층의 슬픔이 그대로 표현되어 이 통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아렸다.
컵밥.
어느 시인은 밥을 먹는 것이 사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로 생계의 국어식 해석이 먹고사는 것이라고 했건만, 취업을 위해 먹는 일을 간소화시켜버리는 컵밥의 출현을 이상하기보다 편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나는 이런 컵밥의 출현을 기괴하다고 말하고 싶다. 기괴하고 이상한 현상에도 우리는 점점 더 간단하게 편리하게를 추구한다.
어느 누군가는 취업이 되어서도 가끔씩 컵밥을 먹는다고 한다.
취업만 되면 컵밥 먹는 일 따위가 사라 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그런 상황은 있더라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을 귀찮게 만드는 일은 자주, 빈번하게, 언제든 생겨난다는 것이다.
일의 양은 많고 위급하며 수시로 일의 자리로 불려 가야 하며, 경쟁과 압박은 심화되다는 것이다.
끼니를 걱정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많이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하다.
최근 한 가지 웃지 못할 통계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가장 많은 MBTI유형이 ISTJ라는 사실이다.(이 자료를 어디서 봤는지...)
MBTI 열풍이 젊은이들 속에 유행했으니 대부분 젊은 층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내향적이며(I) 정보를 수집하는데서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S) 형과 판단이나 결정방식에서 업무나 과업중심의 옳고 그름을 먼저 앞세우며(T) 생활패턴이나 양식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싫어하고 계획된 것만을 편안하게(J) 느끼는 유형이 ISTJ형이다.
모든 유형 검사가 그렇지만 MBTI 검사 또한 개인이 편안하게 느끼는 성향이나 선호하는 스타일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전형적인 틀에 박힌 사고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인식을 앞세운 교육과 환경으로 길러져 왔기 때문에 현실적이며 계획된 삶을 편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성공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져야 하며, 일정의 부를 취득해야 하는 아파트형의 인간.
청년들을 이렇게 몰이해 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취업이라는 한 길목에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내가 아는 B도 그런 유형이었다. 하지만 B는 어떤 터닝포인트를 발견했다.
컴백홈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 간 사례를 소개한다.
B는 외국 무역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럭저럭 실적도 괜찮았고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코로나가 왔고 수급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 자신이 영업하던 외국 기업과의 거래가 끊길 수밖에 없었다. 6개월 휴직 기간 동안 정부지원금으로 버텨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휴식은 취할 수 있었지만 다시 회사가 재가동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는 아직 한창 기승을 부렸다. B는 가족들을 그대로 둔 채 본인만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갈비 장사를 하러 왔다. 본인만 내려온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거리두기가 풀리자 부모님 식당의 손님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느니 아직은 복귀가 결정되지 않은 자신이 부모님 일을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이 30년째 운영하는 떡갈비집은 근방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은 SNS를 전혀 하지 않았다. 입소문을 탄 단골들로만 북적거렸다. B에게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부모님의 고깃집이 어느새 새롭게 다가왔다. 근처에는 골프장도 있고 유명한 놀이 공원도 있어 관광객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B에게 새로운 의욕이 불타기 시작했다.
SNS를 검색하던 B는 인터넷 예약제를 사용하고 있는 식당을 몰래 벤처마킹했다.
B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고 지내던 친구를 통해 가게 이름을 가진 앱을 구축했고 SNS 마케팅을 시작했다.
낡았던 주방과 가게는 일차적으로 수리를 했고 앱으로 예약받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고기를 어디서 구입하며 신선도와 작업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또한 고기 때문에 오는 느끼함을 잡기 위해 후식으로 자몽청을 대접하는 레시피를 새롭게 곁들였다.
앱으로 예약을 받게 되니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없었고 대기 손님에게는 몇 시쯤 식사가 가능한지 알리는 서비스가 제공됨에 따라 갈빗집은 대박이 났다. B는 준비된 재료 분량이 떨어지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도록 해 희소성의 전략도 추가했다. 장사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의 피로도도 올라갔기 때문에 시간이 아니라 재료 소진량을 기준으로 손님을 예약받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B는 아버지에게서 떡갈비를 만드는 과정을 전수받았으며 야외 테이블을 늘리며 매출은 올랐고 자신의 몫으로 월급보다 많은 급여를 받았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회사에서는 B의 복귀를 요청했으나 B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의 가족을 부모님 곁으로 불렀다.
B는 서울에 살았지만 오른 집값, 물가, 교육비를 따지자면 그 회사에서 받는 급여로는 제자리걸음만 맴돌 뿐이라는 사실, 또한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으면 정년 걱정 없다는 사실이 B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무엇보다 장사 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옛말은 진짜로 옛말이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으로 휴식시간이 확보되었고 부모님은 주로 주방, 자신이 서빙과 인력관리를 하고 있어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직장 생활에서 달고 살았던 알레르기가 나아졌고 삶의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B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사진 찍기 수업을 <평생교육원>에서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 가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려 B의 네트워크는 점점 넓어졌고,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
B는 부모님 곁으로 컴백홈 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 위해 B는 새로운 메뉴도 부모님과 함께 개발하려 한다. B의 인생은 코로나로 위기였지만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가져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자녀들의 컴백홈이 유행했다. 부모님의 포도 농장으로 돌아와 와인 숙성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마케팅을 적용하는 자녀들, 집안 대대로 운영했던 가죽공방으로 청년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김난도 내:일의)
대학 선배 중에 농사를 짓는 선배가 있는데 기특하게도 아들 둘이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고 있다. 큰아들은 하우스에서 수경 재배로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주남 농부라는 자신의 브랜드로 딸기 판매를 하고 있다. 딸기 하우스 옆에 딸기 체험장과 카페를 겸한 복합공간을 만들어 딸기체험을 하러 오는 부모들이 편하게 휴식하도록 저렴하게 음료를 제공한다. 딸기체험과 딸기 푸드 만들기는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을 받는데 두 달 정도 사전 신청을 해야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솔직히 이제 막 삼십 대 초반인 선배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1년 동안 혼자 딸기 하우스를 짓는 모습에 나 자신도 반신반의했다. 저러다 포기하겠지. 농사가 쉬운 일이냐고. 그런데 옆에서 가만 지켜보니 3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는 선배보다 훨씬 삶을 여유 있게 즐기는 듯하다. 선배는 쉬지 않고 감농사와 단호박 농사와 배추 농사를 하는데 아들은 딱 한 가지 농사가 끝나면 쉬어 버린다. 딸기 농사와 체험이 끝나면 부부가 놀러 가느라 바쁘다. 살짝 소문을 듣자면 수입도 꽤 괜찮은 모양이다.
주남 농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만큼의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삶을 즐기는데 쓴다.
세대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라이프를 꾸리는 관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일상을 조율하며 노동하는 모습이, 농부라는 직업의 편견을 모두 휩쓸어 가버린다. 농부도 워라벨이 가능한 직업이었다는 사실이 실은 충격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부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삶의 열매를 맺어가는 젊은 농부, 주남 농부가 기특하고 멋지게 보인다.
부모 세대를 뛰어넘어 워라벨의 모습이 가미된 젊음 이들의 컴백홈이 농사라는 전통의 영역까지 확장되어 흐뭇하기고 센세이션 하기도 하다. 젊은 감각이 이렇게 다른 세대의 고정관념을 뒤엎는다는 점이 나는 기분 좋다. 그건 그들만이 할 수 있으니. 또 그래야 하니. 그래서 더 많은 컴백홈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바이다.
직업이라는 겉 칠에 매몰되지 않고 부모님의 전통이나 가업을 이어받는 것.
거기서 새로운 일의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비빌 언덕이 있다는 건데... 비빌 언덕이 있어도 그걸 못 알아보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태도는 이렇게 가업이 있거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가는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아이디어나 성실한 측면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기본일 것이다.
어디서든 지금 빛나지 않더라도, 혹은 어쩌면 빛나지 못하더라도 그 삶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일은 그런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자신만의 성숙이 삶이란 열매를 맺게 하는 게 아닐까. 일을 커리어로 만들어 가는 사람을 우리는 장인, 뛰어난 업을 만드는 사람이라 일컫는 이유이다.
부럽고 나 또한 이런 태도를 지니며 살고 싶어 주절주절 사족을 매다는지 모르겠다.
커리어로 나를 만들어 가는 일로 가보지 않을래요?
현재 하는 일을 다 때려치우고 일부팅을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그게 언제 가능할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