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는 것이 사랑하는 일의 전부 인 것처럼
”현실에서의 사랑은 환상적이기보다 귀찮고 불편하며 번거롭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일 또한 번거롭고 귀찮다. 그래도 매일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을 싸는 것이 사랑하는 일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랑하는 일, 일상의 행위를 가지고 있다. 작아 보이고 하찮고 귀찮은 사랑하는 일들이 하루와 나날의 에너지가 되고 그 에너지가 삶이란 계단을 오르게 한다.
사랑은 불타는 게 아니라 뭉근한 온기를
유지하는 밥솥의 보온 기능에 더 가까울 것이다. “
- 도시락 개론
밤 10시 30분, 씻고 나면 하루의 마지막 노동을 거행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두 개를 꺼내고 프라이팬에 불을 올린다. 팬이 달구어지는 사이 잔파를 넣고 계란을 깨뜨려 휘휘 젖어 팬에 두른다. 이때 간은 국간장을 조금 붓고 소금 간도 조금 하고. 참, 물을 한 모금 부어 계란말이를 부드럽게 한다. 계란을 겹치며 조심스레 만다.
‘보기 좋은 계란말이가 맛있기도 해 ‘
불을 조금 약하게 낮추어 계란말이가 잘 익도록 눌러준다. 프라이팬 안에서 계란말이를 뒤집게로 먹기 좋게 소분한다.
보온 도시락에 밥을 푸고 그 위에 계란말이를 잘 덮는다. 다른 반찬통에는 멸치볶음, 또 다른 통에는 김치를 넣는다. 밥이 있는 통은 밥솥에 넣어 따뜻하게 보관하고 다른 반찬통은 도시락 가방에 넣어둔다. 숟가락도 잘 챙겨 가방 한쪽에 얌전히 넣어 밥 솥 옆에 둔다.
새벽 6시 14분이면 집을 나서는 남편은 밥 솥에서 계란말이가 있는 밥만 꺼내 도시락 가방에 넣어 출근한다. 회사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이 행해지는 우리 집 저녁 루틴은 몇 년 전 남편이 쓰러지고 난 뒤 생겨난 아주 작고 귀찮은 일이 되었다.
너무 이른 시각의 출근이라 남편이 아침밥을 원래 는 먹지 않았고 간혹 출근해 컵라면으로 때우기도 했으나 심하게 앓은 이후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우주의 궤도 수정이 아니라 한 끼 식사의 수정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매일 싸는 일은 은근히 잔 신경이 쓰인다.
밑반찬을 마련하는 것, 밥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 계란이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시엄니께서 매일 새벽 도시락을 쌌으나 시엄니의 팔수술로 내 차례가 되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는 건 고역이었다. 그래서 잔꾀를 내어 저녁에 미리 도시락을 싸두기 시작했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도 아참, 도시락 씨야지 하며 끙끙대며 일어난다. 감정이 먼저인지 행동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는데 매일 기도문을 외우듯 도시락을 싸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꾀나 늑대를 사랑하는구나. “
귀찮은 일을 매일매일 하는 건, 매우 귀찮고 아주 귀찮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일을 몸에 익혔다는 것>으로 요즘 핫한 말로 찐사랑인가. 사랑의 체화인가. 결혼 30년 즈음에 비로소 내게 온 경지라니, 으흠... 스스로에게 감동되는 흐뭇한 마음이라니.
누군가 당신을 위해 매일 밥을 차리거나 옷을 다리거나 시장을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차(tea)를 타거나 어디론가 픽업을 책임져 준다면 표현하는 가벼운 용기를 내어 주길. 가벼우면서도 마음을 살짝 데우는 그런 참한 용기, 한 번쯤 꼭 안아주는 살가운 용기.
남편은 살가운 용기를 보여준 적이 없다.
끝내 요원해 보이지만 구걸해서라도 나는 그에게서 입맞춤이란 행위를 빼앗아 낸다. 남편이 사경을 헤맬 때 나는 믿지도 않던 신에게 맹세했다. 살려만 준다면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겠다고.
그러나 머지않아 욕망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시락을 싸며 매번 그때의 기도를 떠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면 귀찮은 도시락이 고마워지기도 한다.
끊어 오르는 욕망보다 감사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때의 기도를 꼭꼭 간직할 필요가 있음을, 나는 안다.
- 나의 도시락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