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처럼 헐렁함 사람이 필요한 이유
양치질을 하다 거울 속을 무심히 보니 면티 목 부분이 헐렁하게 늘어져 있다. 칫솔을 어금니로 깨문 채 바지를 내려다 보니 잠옷바지도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다. 윗옷 소매는 걷어 올려도 연방 다시 벌러덩 누운 형국으로 내 손등을 덮어 버린다. 줄무늬가 어그러져 헐렁하게 늘어난 티가 이제 막 허물을 벗어젖힌 껍데기처럼 쭈글쭈글하다.
외출복으로 입다가 목이나 소매가 늘어나면 가감 없이 잠옷 대열로 넣어버리는 면티, 시장 속옷 가게서 흥정하며 이천 원을 깎아 들고 온 보랏빛 면바지는 허리 고무줄이 늘어나 금방이라도 쭈욱 하고 흘러내릴 것 같다. 지금 내 잠옷에 어울리는 단어는 궁상이란 단어가 딱이다.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헌신적인 엄마의 시그니처 실루엣이 된듯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까이 잠옷 하나 얼마 한다고... 이를 박박 닦았다.
잠시 후 워터픽으로 양치질을 끝낼 무렵, 언젠가 너튜브로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옷의 정체성을 알아차리자 궁상이란 단어가 금방 마음속에서 도망쳐 버린다.
나를 위로한 영상은 이렇다.
대기업 사모님이 갑질로 도마에 올랐을 때 쇼트 영상으로 나온 화면, 나보다 몇 천배 재산이 많은 그 사모님도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하면서 내가 겨울에 자주 입는 분홍극세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 무늬가 들어가고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
'어머, 저거 나랑 똑같은 거잖아.'
그 영상을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뜨끈한 안온함이 퍼졌다. 사람 사는 건 다 개찐도찐이야. 잠옷이 그럼 그렇지. 디올을 감고 자겠어?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도 잠옷의 정체성은 편안함이라는 사실 때문에 큭, 하고 개운하게 웃어 버렸다.
잠옷은 샤넬 NO5라는 메릴린 먼로도 있지만(마릴로먼로는 이 샤넬 향수를 뿌린 채 누드로 잠을 잔다고 해 그녀의 잠옷으로 샤넬 NO5가 유명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잠옷은 외형적으로 나를 꾸미기보다 입는 사람의 체형이나 움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편안함이 우선이다.
몸을 해방시키기 위해 입는 옷이 잠옷이다. 그러려면 천이 부드러워야겠지, 목이나 소매나 무릎부위가 느슨해야겠지. 몸부림을 쳐도 걸리적거림이 없어야겠지. 입지 않은 듯 가벼워야겠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궁상이 아니고 최적화된 잠옷이다.
헐렁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코믹 릴리프라는 장치를 떠올린다.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요소로 코믹릴리프(comic relief)가 있다. 극의 긴장감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장치.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긴장감 만을 유지할 경우 관객이나 시청자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긴장감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해학을 가진 감초의 조연이 코믹릴리프 기능을 수행한다고.
요즘 흥행 중인 김은숙 작가의 더글로리에서 문동은의 조력자로 나오는 강현남이란 캐릭터는 헐렁함(코믹 릴리프로)으로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맞고 사는 년은 웃지도 않는 줄 알았어요?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그녀의 헐렁함이 학폭으로 고통받는 문동은의 고통을 알게 모르게 위로한다. 똑똑함도 아니고 부유함도 아니고 고차원의 지혜도 아니지만 그녀의 헐렁함이 시청자를 웃게 만들고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개인적으로 이 대사가 더글로리 최고의 대사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관계에서도 코믹릴리프 같은 사람이 있으면 팽팽한 분위기가 느슨해진다. 회의를 할 때마다 우스개 소리를 잘해 긴장감을 부드럽게 조물락 거릴줄 아는 사람.
관공서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치명타는 느닷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신세계의 업무이다. 특정한 팀에게 부과되는 업무가 아니면서 어느 팀에든 맡기기 애매한 경우(가장 최근이라면 AI 면접과 관련된 업무) 업무 담당자를 정해야 하는 회의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해진다.
회의 분위기는 살벌하며 신참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또 자신의 업무가 지금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만으로 볼이 터질 것 같고 눈이 허공을 응시하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듯하다.
'어서 로또라도 돼서 이 바닥을 떠야지.‘
그때 호탕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는 그녀...
"AI 면접이면 지가 다 알아서 하겠네. 크게 일도 없겠는데.. AI가 지가 알아서 해야지. 사람한테 짐이 되면 지가 성을 바꿔야지. AC로. 에이~~씨!"
그녀의 말 때문에 심각했던 회의 참석자들이 한바탕 웃고 말았다.
“에이 씨, 말 되네.“
팽팽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밀가루 반죽처럼 보드라워졌다. 사람들은 웃음기를 띠며 한 마디씩 자기 의견을 말했고 AI면접은 6개월마다 담당자를 바꾸며 맡기로 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느라 어쩌면 우리는 회의에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어떤 말들을 주고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헐렁한 농담은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반전 시켰다. 에이 씨라는 유머를 구사한 그녀는 코믹릴리프의 역할을 보기좋게 소화한 셈, 관계에서 참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헐렁함은 사회생활에서 생각보다 소중한 무기가 된다. 박박함, 치밀함, 완벽함, 밀도있는 사람보다 어딘가 허술한 사람, 무엇인가 모자람이 있는 사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곁을 주기가 수월하다. 그런 사람들 옆에서 나도 헐렁해지가 수월하다. 그건 진리다. 내가 먼저 헐렁해지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네가 밥을 사면 나는 커피를 사야 되는 관계가 아니고 내가 온전히 밥과 커피를 다 사고도 아깝지 않은 사이, 잠옷바지 위에 바지를 껴 입고 나가 잠옷 실루엣이 발목으로 드러나도 하하 호호 거리며 같이 팔짱을 끼고 다닐 수 있는 사람.
쓰던 숟가락으로 같이 아이스크림을 떠먹어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 무릎 튀어나온 바지를 입고 나가도 거슬리지 않는 사람. 시댁 흉을 보면 같이 시월드 욕을 하며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런 헐렁한 사람, 잠옷 같은 사람이 내겐 있다. 덕분에 숨통이 막힐때 숨을 틔워 준다. 때문에 생기가 돌고 스트레스의 일상을 잘 넘기게 된다.
직장의 인간관계는 뻣뻣하다. 친목 모임을 가도 누가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은근히 신경들을 쓴다.
잘난 자식 자랑에 남편 자랑에 또 덜 늙었다는 자랑에(당겨 놓고 안 당겼다고 우기는) 체면과 존심과 있는 척이 피곤해지면 나는 헐렁한 친구이자 언니를 만나러 간다. 잠옷같은 사이로 내 마음을 쑥 밀어 넣는다. 맺힌 곳 없이 편하고 자연스럽고 마음이 한껏 이완된다.
스트레스 받는 인간관계가 파스타를 먹는 느끼한 시간이라면 잠옷같은 사이는 매콤한 신라면 맛이 아닐까? 사회생활의 느끼함을 잠옷 같은 헐렁한 관계로 달래며 살고 있으니, 잠옷은 정말 좋은 옷이다. 궁상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에 최적화된 옷, 늘어나야지만 제 몫을 다하는 옷.
누군가에게 잠옷 같은 사람이 되어 보자고,
헐렁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헐렁하게 살아보자고,
대충 좀 살아도 궁상은 아니라고,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