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풍경
삼월이야, 삼월. 초록 초록하고 싱싱한 오이 풋내가 목구멍에 와닿는다. 첫 달도 아니면서 첫 달처럼 낯선 무대로 사람을 밀어 넣는 초심의 달, 삼월.
두 녀석이 기숙사로 들어갔다. 집을 떠나는 설렘이 등 뒤로 묻어 나오는 걸 감추지 못한 채, 얇은 두려움도 껴입은 채 총총 곁을 떠났다.
옷 박스, 드라이기, 어댑터, 속옷, 이불과 베개, 물티슈와 화장지, 쓰레기통, 샴푸와....
그리고 미처 상향하지 못한 아들의 자동이체 한도. 낯선 서울 거리에서 은행을 찾고 42번의 번호표를 받아 들고 큰소리로 남편과 나는 박박 싸웠다.
아들을 떼어 놓는 태도에 합의하지 못한 미완의 부모였다.
이제 그런 것쯤은 혼자 해결할 나이야.
아직 미성년 자니까 부모 동의가 필요할 거라고!
물 잔에 남은 물을 보고, 반밖에 안 남았구나 하고 절망하는 시선과 반이나 남았네라고 긍정하는 반대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섰다. 우리는 유치 찬란한 싸움을 거듭하고 반복하면서 늘 찬란하게 싸운다. 자식이 자랄수록 부모 노릇도 시끄럽고 부산스럽다.
처음이니까.
아들을 남겨둔 서울거리를 그래서 씩씩거리며 빠져나왔고, 그러고 갑자기 펑펑 운 것은 나였다.
실습 때문에 3학년이 되어서야 기숙사로 들어간 둘째 녀석은 빨래를 해야 한다며 시나브로 집으로 왔다. 다음날 안 가져간 속옷이 있다면 또 왔다. 어색한 이별에 적응하는 삼월....
화장대 위 뭉그러진 휴지 쪼가리가 사라졌다. 거실 바닥 머리카락도 듬성듬성 눈에 띈다. 식기세척기를 꽉 메우던 설거지 거리가 6개나 줄었다. 늘 모자라던 욕실 수건이 얌전하게 포개어져 있다. 식탁 자리가 남는다.
돌멩이처럼 마구 뒹굴던 양말 뭉치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내 잔소리도 사라졌다.
쿵쾅거리던 발걸음이 사라졌다.
두 녀석의 체취가 사라졌다.
집으로 숭숭 바람이 든다.
전기장판 온도를 속절없이 높였다.
삼월은 봄의 시작이 아니라 겨울의 끝자락,
이 냉기를 잘 다독여야 하리라.
두 녀석이 떠난 밤에 등을 말고 누웠다.
열일곱 살에 엄마 곁을 떠났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여전히 모난 바람
낯선 골목 배회할 때
수레 실은 낡은 밥솥에서도 밥은 익었다
가난은 그래도 마음을 살 찌우지
삶의 모서리가 어떻게 닿아가는지
삶의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일찍부터, 새벽부터 알게 되지
그건 특별히 나쁜 일도
아주 슬픈 일도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제 손으로 밥해 먹은 일이 당연한 줄 알았다
보지기 둘둘 말아 떠나보냈던
유년의 삼월,
어미 심장이 어떻게 파닥거렸는지,
한 번쯤 뒤 돌아 꼭 안아 줄 걸
헐거운 문에 자물쇠 꽁꽁 달아 걸던
투박한 손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한강이 다 지나가도록
아들 보내는 게 그리 서럽냐며
지청구로 구박하는 남편,
으앙, 울음을 턱 놓아버렸다
이토록 오래 지나고나서야, 알아차린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