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바나나킥은 한 번씩 하잖아요
#1. 아침, 엄마 방 화장대 앞
입을 오므리며 립스틱 바르고 쩝쩝, 파운데이션 뚜껑 열고 얼굴에 탁탁 두드린다. 출근 준비로 익숙한 엄마 손놀림. 옆에 놓여 있던 휴대폰 알림. 띠르륵... 엄마 거울 보며 요리조리 얼굴 비춰본다. 바삐 일어서며 엄마 휴대폰 문자 본다.
(휴대폰 문자 클로즈)
" 땅땅 캐슬 예비후보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182번입니다!"
엄마: 오.... 오 대박!!! 아.... 악!
환호를 지르며 엄마 거실로 나간다.
#2. 동, 거실
엄마 휴대폰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좋아서 팔짝팔짝 뛴다. 얼마나 좋아서 뛰는지 천장까지 머리가 닿을 기세다. 밑에는 잠옷 바지 위에는 데님 셔츠 자락이 단추도 제대로 안 채워져 있다
엄마 고함소리에 자다 깬 녀석들 거실로 나오며
동시에,
아들과 딸 : 무슨 일인데? 왜... 그러는데?
엄마: 대박! 엄마 당첨됐어! 아파트 당첨됐다고!!
아들과 딸: 헐? 진짜?
엄마: 그래! 이것 보라고! 예비당첨 182번!!
엄마가 해 낸 거야! 된 거라구!!
좋아서 계속 팔짝팔짝 뛰는 엄마.
아들: 근데 어머니, 이제 그만 좀 뛰시죠.
밑에서 올라오겠어요.
엄마: 괜찮아. 당첨돼서 이사 갈 건데 뭐.
아들: 근데...어머니, 예비당첨 182번이면 후보 아니에요?
정적......
(항상 진실일 땐 정적이 감돈다)
딸: 그래. 이건 좀 이상한데....?
망아지처럼 뛰던 엄마 갑자기 거실 의자에 앉더니 휴대폰을 심각하게 들여다본다.
아들: 어머니.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홈페이지
들어가 확인을 해보시죠.
엄마: (저토록 차분한 아들이 얄밉기만 하다) 알아.
엄마도 그럴 생각이었다고.
아들: 어머니....
엄마:...(휴대폰 들여다보며) 왜...
엄마를 아들이 꼭 껴안아준다.
아들: 우리 어머니, 진짜 새 아파트 가고 싶은
모양이네
엄마: 너는 안 그러냐?
아들: 저는 이대로도 좋아요.
엄마: 넌 곧 나갈 거니까.
아들: 뭐... 사는데 딱히 불편한 건 없잖아요
아들 등을 탁 내리치는 엄마.
아들 엄마 셔츠 단추를 제대로 고쳐준다.
엄마: 이놈아. 얼렁 학교나 가라.
딸: 아휴. (절레절레)
아들이랑 엄마랑 위치가 바뀌었어.
#3. 엄마 회사
청약홈 홈페이지 접속에 떨리는 손으로 아이디와 비번 넣는 엄마의 긴장한 얼굴. 휴우. 큰 호흡하고 망설이다 엔터를 누른다.
(컴퓨터 화면 클로즈업)
서**님은 땅땅 캐슬 예비당첨 182번에 당첨되었습니다. 예비당첨자 분들은.... 안내문 눈으로 읽는 초조한 눈빛.
곧,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예비당첨이라고 치자 주르륵 올라오는 기사들. 엄마 긴장할 때 버릇, 코를 막 후빈다.
#4. 우리 식구 방 깨톡
(대화창을 따라 띠르링 띠리링 비지엠 울린다)
깨톡 올리는 엄마의 서툰 손놀림.
엄마: 씨발샤끼들!
무슨 예비당첨을 182번까지 뽑냐?
분양이 무슨 수능이냐고? 수능도 이 번호까진 안 뽑는다. 아... 띠바 놈들!
딸: 그봐. 예비당첨은 후보지?
엄마: 응.... (슬픈 이모티콘)
딸: 괜찮아. 담에는 되겠지
엄마: 벌써 7번째다...
딸: 우리 엄니, 힘내요(파이팅 이모티콘)
엄마: 일할 맛이 안 나네(다크서클 가득한 이콘)
띠르링, 띠르링.... 계속 울리는 깨톡 소리
해쓱해진 엄마 얼굴,
엄마: (마음속 혼잣말) 당첨이 돼봤어야 예비당첨이 예비후보라는 걸 알지. 이건 뭐. 초초 부린이네
쪽팔리게.
엄마 끝내 책상 위에 엎드리고 만다.
계속 울리는 깨톡 소리.
#5. 밤, 모두 잠든 시각
엄마 화장대 위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
아들 엄마방문을 살짝 닫고 나온다.
#6. 아침, 엄마 방
엄마 얼굴 수건으로 닦으며 로션을 집는데 화장 대위 바나나킥 놓여있고 그 옆에 조그마한 쪽지.
엄마 로션을 다 바른 뒤 손을 수건에 닦으며 쪽지 열어본다
(클로즈업)
단정하지 못한 아들 글씨체.
어머니, 누구나 바나나킥은 한 번씩 하잖아요. 분양 당첨 안되면 나중에 제가 집 사드릴게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바나나킥, 제 돈으로 샀어요. 이거 먹고 기분 푸세요. 사랑해요 어머니.
- 다음에 엄마 집사 줄 아들
참으려는데 자꾸 눈물 나는 엄마.
들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운다.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절망이 가슴에 훅 들어올 땐
바나나킥을 줄곧 먹는다.
바사삭... 바사삭...
바나나 향을 뒤집어쓴 뭉탱이가 샤르륵 녹는다.
5분쯤이면 바나나킥은 작살난다.
손가락까지 쪽쪽 거리고 나면
출렁이는 그것들이 잠잠해져 있다.
입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가능한 일이다.
바나나킥은 쓰라림을 덮는 마법용 과자다.
쓰라림이 바사삭, 바사삭 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