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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Sep 11. 2021

알리오 올리에 파스타 만드는 남자

사랑을 요리하는 시간



꼼꼼한 성격은 레시피를 존중한다

"와아~ 대박 맛있어.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 최고야!"

아빠가 만든 알리오 올리에 파스타를 먹으며 딸은 엄치척을 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남편이 에이, 설마.... 약간은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포크로 돌돌 말린 파스타를 입안 가득 넣은 채, 우... 웅? 동그랗게 눈을 뜨며 또 엄지 척을 했다. 자신의 그릇에 담긴 파스타를 딸 그릇에 더 옮겨주는 손길이 그윽했다. 알리오 올리에 파스타는 고소하고 쫀득하고 페페론치노는 앙증맞게 면발 속에서 숨어 있다. 꼼꼼한 성격의 남편은 요리학원에서 가르쳐 준 레시피를 철저하게 따른다.  알리오 올리에 파스타에 사랑까지 듬뿍 얹었으니 당연히 베스트다. 요리학원을 다니며 남편이 꿈꾸었던 장면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주름진 얼굴에 땀범벅이어도 말간 웃음이 식탁에 머문다.



여름을 요리와 함께 뜨겁게

선박 수주 물량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남편은 6월부터 10월까지 휴직을 하게 되었다.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기에 국민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2시~6시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원을 나갔다. 한식조리사에 도전하느라 주말에는 필기 공부를 했고 필기는 가볍게 통과를 했으나 실기에서 40점을 받아 합격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숙련도에서 점수를 받지 못한 듯했다.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남편은 아주 많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요리에 도전하는 내내 남편의 시간은 열정적이었다. 학원에서 배운 요리를 집에서 실습하며 한식의 까다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섭산적, 화양적, 너비아니 구이, 탕평채, 칠절판... 보기에도 어려운 음식을 척척 만들어내는 모습이 어딘가 든든해 보였다. 요리하는 정성과 시간과 번거로움을 이 남자는 알겠구나 싶었다.

큼직하고 까만 손가락으로 재료를 썰고 플레팅을 할 때는 셰프라도 되는 듯한 진지함이어서 이 남자의 적성이 요리에 있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요리 재료와 관련해 봉여사와 티격태격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남편의 영역이 부엌까지 진출하자 봉여사는 처음 경계하다가 나중에는 은근슬쩍 맡겨버렸다. 오늘 뭐 먹지라는 멘트는 원래 봉여사 것이었는데 어느새 남편의 멘트로 자리 잡았다. 남편은 500그램의 파스타 면을 사 오라고 했고 종이컵을 계량컵으로 사용했다. 요리는 공식이다. 남편은 그 공식을 아주 잘 지켰다.



더운 여름 남편의 요리 열기로 부엌이 내내 뜨거웠다. 매일매일 행주 삶는 열기가 더 뜨거웠다. 뭔가의 성과물을 확인하는 작업, 정확한 계량측정과 공식의 실천이 무기력이나 나태해진 사람에게는 심리적 위안과 자신감을 준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제과제빵이나 목재가구 작업들을 많이 한다. 노동에서 잠시 물러난 남편에게 요리도 그런 게 아니었나.


남편이 만든 비빔밥을 먹는 순간, 식당 차릴까?하고 고함을 질렀다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모를 행복의 질감.

먹는 것을 만들어 내는 요리 노동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지를 깨닫는 것, 식탁 위의 차림에 감사할 줄 알게 되는 어색한 감정,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음식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이 갖는 안온함, 이마에 맺힌 땀을 보며 고마움을 너머 오는 감사함의 자락.....


남편의 휴직은 요리와 함께 우리 가족을  들뜨게 만든다. 양식으로 넘어간 손놀림은 그새 많이 유연해져서 기름 소리마저 감미롭게 만든다. 햄버거 패치를 만드는 냄새는 허기를 느끼게 한다. 알리오 올리에 파스타가 어제 메뉴였다며 오늘 요리는 수제 햄버거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 남편은  구만 입고 지글지글 볶는 소리와 함께 부엌을 부지런히 오간다.



 만드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가장의 무게를 견디었다면 음식 만드는 것으로 가족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지금, 먹고사는 것에  남편의 그늘이 존재한다는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보다 요리를  잘하는 남편이 있다는  아내로서는 왠지 뿌듯하다.

든든한 백이 생겼다. 끼니마다 엄마보다 아빠를 찾는 , 그건 진짜 홀가분한 일이다.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정해진 말들이 오늘도 식탁 위를 맴돈다.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모를 행복의 질감이 냄새와 소리와 모양으로 우리 곁에 지금 머물고 있다. 고소하고 지찍거리고 한껏 부푼 세상에 없는  하나의 , 그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행복의 질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 준 남편






올여름 우리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지 엄마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읽다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할 또 다른 좋은 것에 도달해 있게 될거다. 엄마가 생을 믿고 그래 왔듯히 네 생을 믿어라. 걷듯이 가벼이 앞으로 나아가거라. 다만 이 한순간이 너의 생의 전부라는 걸 잊지마라.
-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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