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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Mar 08. 2021

일요일 식탁 위의 질문

질문은 가끔 이렇게 파도타기를 한다


식탁 위의 질문

일요일 오전 9시 30분, 늦잠 자는 녀석들을 깨워

식탁 앞에 앉힌다. 봉여사가 미리 끊여놓은 미역국과 내가 엉성하게 만든 김치 계란말이. 고작 이걸 해놓고도 엄청나게 맛있는 반찬을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았다.





봉여사의 첫 질문,

우리 아파트 자리에 원래는 뭐가 있었을까?

- 무덤, 공동묘지, 공원, 시장, 산...

모두 땡이었다. 정답은 경남대학교. 경남대학교가 댓거리에 생기기 전 우리 아파트 자리에 애초에 있었다고. 모두들 정말? 하고 탄성을 질렀다.



착한 늑대의 질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 띠 동물을 말해봐. 이런 이것도 모르는 녀석이 있다. 쥐소범묘/용뱀말양/원닭개돈.. 근데 아빠, 이건 왜 외워야 되는데?

가끔 나이를 띠로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은근히 헷갈리까 외워두면 좋을 거 같아서. 그럼 오늘 저녁에 다시 검사해보자고.. 제대로 외우는지.



한데렐라의 질문


근데 아빠, 한자 미가 왜 양인지 알아?  우리가 아름다울 미를 쓰잖아. 양도 미를 쓰고 아름답다도 미를 쓰잖아.... 어, 그렀네.

중국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너무 말라서 통통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양을 보는 순간 털이 복슬복슬한 게 너무 이쁜 거야. 그래서 양의 생긴 모양을 본떠서 아름다울 미가 된 거지. 아름다울 미, 맨 위에 점 두 개가 양의 귀야. 아름다울 미의 부수도 그래서 양양이지.


어... 헉! 그런 걸 아는 아이였어?



엘리스의 질문

간호학을 공부하면 은근히 그리스 신화와 연관된 용어가 나오거든. 아트란스 같은 단어 말이지. 근데 뇌를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도 아라크네 영역이 나오거든? 잠자코 듣고만 있다.


그리스 신화에 아라크네가 매우 실을 잘 짰기 때문에 아테나와 내기를 하는데 둘의 실력이 비슷했어.근데 아라크네가 짠 천 모양이 제우스가 여러 여성들과 정사하는 모양이었어. 신을 농락해 버렸지.

아테나가 분노하여 아라크네를 어떤 생물로 만들어 버려. 힌트는 실을 짠다는 것에 있어. 이 생물은 무엇일까?

- 나비, 누에, 번데기, 잠자리,

아빠가 말했다. 거미! 딩동댕~

우리 뇌를 보호하는 영역에는 이렇게 거미줄처럼 엉겨있는 지대가 있는데 여기서 유래해서 아라크네 지대(거미줄처럼 엉겨있다)라고 부른데.


이건 저의 피셜이 아니고요,

간호학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해주신 내용이야.

인체에 그리스 신화가 적용된 용어들이 이렇게 나오다니. 모든 학문은 연결된다는 통섭은 맞다고 증빙되는 것 같아.



나의 질문

마침 사과를 후식으로 깎고 있었으므로, 읽고 있는 소설의 한 대목을 읽고 맞추는 것으로. (      ) 안에 들어갈 말은?


켄 리우의 첫 단편소설, 카르타고의 장미 중의 일부분이야. 주인공이 몸의 소중함을 느끼는 대목인데. 나의 집 뒤에는 이 나무의 과수원이 있고, 이 나무 열매의 한 종류야. 힌트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과일의 한 종류이지.



(      )은 온몸으로 맛을 음미한다.
단단한 과육은 깨물면 턱이 얼얼하고, 아삭 거리는 소리는 두개골에 부딪혀 메아리치고, 시디신 맛은 혓몸을 타고 넘어 발끝까지 퍼져 나가니까. (     )을 먹을 때면 내가 정말로 살아 있는 느낌이 난다. ...........
몸은 저 나름의 지능이 있다. 정신은 결코 하지 못할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줄 아니까.


아빠가 맞추었다. 홍옥.

이 글을 읽는 동안 홍옥이 연상되며 신맛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도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감각마저 들었다고.


내 질문에서는 집중력이 흩어졌다.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 내가 읽고 있는 책을 큰소리로 말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아들의 질문

고구려대학이 있게 없게?

역시 고3이라 대학에 관심이 많다.

- 있다! 그런데 망했데. 부실대학으로 정리되었데. 어떤 사람이 군대 있었는데 학교 망했다고 다른 학교로 편입하래서 당황했다고. 그럼 고려... 아, 있네. 그럼 신라대는? 어, 있다. 신라대. 조선대도 있고 백제는? 백제대 있어. 뭐야, 다 있잖아? 가야는? 가야대도 있어. 와~~ 대박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학이름이 다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학은 너무 많이 생겨났다고 한탄했다.



여기서 내가 좀 오버를 했다. 삼국대는 없잖아.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식탁을 떠났다.

하여튼 엄마는 똑똑한 거 같으면서도 쯧쯧......

어머니, 어디가서 그런말 하시면 안되요.

야, 없잖아!

니네들 설거지 하기 싫어서 피하는 거지!




일요일의 식탁은 토론이나 주장이 풍성한데  오늘은 질문이 각자의 관심 분야를 드러냈다. 앎을 나누는 일은 뿌듯하다. 앎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흐뭇하다. 대화의 눈높이는 수평을 이루고 어른보다 흡인력이 좋다. 서로의 지적 높이를 키워주는 브이로그의 컷, 그 속에 행복의 실체가 있다.



식탁위 대화는 경쾌하기도 진중하기도 때로는 치열하기도 하다. 대화의 스펙트럼에 따라 다른 꽃을 피운다. 식탁은 행복의 화분이 된듯하다. 아직은 한 집에 살기 때문이다.



3월, 일요일 어느 날, 아무렇지 않은 날, 특별한 질문들이 만들어 낸 풍경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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