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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an 31. 2021

흉터가 된 명절증후군

서투르게 진보한다



일상화된 비일상적인 명절

코로나 언텍트 속에 세 번째 명절, 또 설이 다가오고 있다. 봉여사님은 벌써 둘째 아들에게 이번 설에도 오지 말라는 멘트를 남겨 놓았다. 우리끼리 단출하게 느긋하게 설 연휴를 지낼 생각을 하니 빨간 날짜가 기특, 기특하게 여겨진다. 코로나가 끝나 원래대로 돌아가 가족이 북적거리는 명절이 되면 되레 이런 시간들이 그리워질 것 같은 섭섭한 감정까지 든다. 모든 것은 부정과 긍정의 양면을 갖는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미혼인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미혼이니까 명절증후군 같은  없죠? 당연히, 당신이라도 그런 안전지대에 있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무심코 던졌다. 갑자기 톤이 높아졌다. 뭐라 합니까. 벌써부터 명절에 친정집  생각 하면 가슴이 쿵꽝거리는데. 왜요?.... 오빠가 이혼해서 음식  사람이 없어요. 그럼  하면 되죠. 오빠가 격식을 차리는 사람이라      다해야 해요. 그럼 오빠가 하겠지. 동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주면 말도  한다. 절만 합니다. 절만. 이런...


그럼 제사음식을 시켜요. 요즘은 그렇게 많이 하던데.... 안된답니다. 제사는 정성인데 산 음식은 정성이 없어서 안된데요. 그래서 제가 몇 년 안 갔더니 팔순 된 작은 어머니가 제사음식을 했더라고요.  뒤처리는 조카가 하고. 이제 조카도 집에 안 와요. 힘들다고. 제사 때문에 가족이 모이질 않아요. 오빠는 무조건 제사는 지내야 된다고 하면서 손끝 하나도 까딱 안하고... 도대체 그놈의 제사가 뭔지 모르겠어요.

산 사람 죽으라고 하는 게 제산지, 조상을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같이 밥 먹다가 체하는 줄 알았다. 명절증후군이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공통분모라니. 당신마저 그렇다니. 명절증후군 증세가 갑자기 훅하고 올라왔다. 심장이 벌렁 거리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딘가 꽉 막힌듯한 울렁증. 둘 사이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의 상처, 지금은 흉터

명절 전날 큰집에 제사음식을 하러 가는 도중 너무 가기 싫어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큰집에도 우리 집에도. 그리고 혼자 드라이브를 가버렸다. 어떤 때는 큰집 앞에 차를 대놓고 한참을 차 안에서 미적대다 도살장 가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간 적도 있었다..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제사 음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일단 식용유나 프라이팬 같은 음식의 재료와 도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매번 물어야 하는 것. 하나는 사람에 따라 음식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 내가 경험 한 바에 의하면 우리 봉여사는 탕국에 해산물을 넣고 큰어머니는 돼지고기를 넣었다. 큰집의 음식 스타일을 따라 하려면 일일이 묻거나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해야 한다. 느끼한 튀김을 5~7개씩 지지고 볶고 튀겨내면 온몸에 기름 냄새가 나를 포박했다. 머리가 찌끈찌끈했다.



작은 명절날 꼭 큰집 가서 일해야 해?

일 년에 두 번인데 그걸 못하냐?

이 대사 어디서 많은 들어본 버전. 현재 방영되고 있는 며느라기에 나오는 대사, 주로 남자들이 맞받아치는 대사이다. 고작 두 번이면 당신들이 좀 하든지, 남의 집으로 우리를 도우미(진짜 도우미는 돈이라도 받지만) 보내 놓고 그렇게 당당하게 고작이라니. 별것 아닌 고작이라도 죽도록 하기 싫은 고작이면 횟수가 중요하냐고. 내 존엄이 지하 100m까지 떨어지는데 어떻게 고작이라고 하는 건지. 엄청 싸웠고 매번 싸웠다. 오죽하면 엄마 아빠는 명절 때만 되면 싸운다고 할 정도로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동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결혼 한 첫제사에서 동서가 제사상을 들어야 했다. 동서가 긴장을 했는지 부엌 문턱에 발이 걸려 우당탕 하고 제사상이 엎어졌다. 그럴 수도 있지. 불편하게 한복을 입었고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뫼밥이 무거웠으니까. 시댁 어른들 앞이라 긴장도 했으니.

방정맞게. 조상들 볼 면목도 없게.

동서가 다친 데가 없는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큰어머니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이렇게 되뇌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이 때문에 우리 봉여사는 죄지은 얼굴이 되었고 나도 얼른 달려가 동서를 부축하고 엎어진 제삿밥을 주워 담았다. 이 때문에 동서는 큰어머니에게 내내 밉상을 받았다. 자기 딸이어도 그랬을까.



제사상에 음식을 갖다 나르며 나름의 반항을 했다. 밤이나 대추, 곶감 같은 것들을 살짝 호주머니에 넣는다든지. 과일을 놓는척하며 일부러 떨어뜨린다든지. 그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음식을 놓을 때 궁둥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요망하게. 남편이 한 번은  달려와 내 허리를 잡은 적도 있지만. 제사의 엄숙함을 가볍게 여기는 액션이 은근히 스트레스에 도움이 되었다.



제사를 다 지내고 친척들끼리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우리 차지였다. 동서와 나. 설거지 양은 어마 무시했다. 설거지가 얼추 끝나갈 때쯤이면 큰집 행님은 온 부엌을 헤집어서 오랜만에 수저통을 담갔고 찌든 냄비를 옆에 갖다 놓았다. 꼭 우리만 오면 부엌 대청소를 하는 형님. 이집에서 마음껏 부려도 되는 부엌데기가 된 신랄한 느낌. 키가 작은 나는 앞치마를 해도 싱크대 물이 튕겨 앞쪽의 옷이 다 젖었다. 눈치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남자들. 빨리 가자고 재촉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거실에 앉아 멍청하게 리모컨이나 돌리고 있다. 집에서는 부엌일을 잘하던 남자가 여기만 오면 큰아버지와 똑같은 에티튜드로 변신하는 이상한 남편.



그렇다. 남자들도 명절때만 되면 어른들이 구분지은 역할에 순응한다. 철저하게 공간의 역할분담을 규정짓는 체계에 얌전해진다. 절대 부엌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런 네가 처음에 얼마나 낯설었는지. 너에게 그런 얼굴이 있었구나.

강화길 소설 <음복>의 첫 문장은,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너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거야.

이미 결혼이란 구속으로 자신의 영역에 안착한 우리에 대해.




10년이 넘는 동안 잔소리와 싸움의 리뷰를 쌓았다.

명절 아침, 이혼할 것처럼 싸우고 혼자 울면서 영화관에 간 적도 있었다. 설날 아침 영화 보러 온 가족 무리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제사의 부엌데기로 내가 종종 거리고 있을 때 이렇게 명절을 보내는 사람도 있구나. 영화 보는 내내 서러워 펑펑 울었다. 그건 벤츠 타는 동창생을 보는 것보다 더 배 아픈 일이었다. 퉁퉁부은 눈으로 집에 올 수가 없어 만화방에서 4시간을 보내고 저녁 늦게 들어왔다.



외딴섬에 혼자 갇힌 기분이야.

제시때 살짝 웃으며 희생해주지 못하는 내가 마치 아주 못된 년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지. 네 엄마는 잘도 하는 일을 유별나게 군다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살짝 희생하기 싫어. 나는 네 엄마가 아니라고. 우리가 싸우는 걸 자꾸 내 탓으로 떠넘기지 마. 문제는 내게 살짝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네게 있어. 앞으로 제사는 당신 혼자가. 조상님 은덕같은 건 나한테 필요없어. 그냥 내 힘으로 잘 살아볼게.



상처가 나고 흉터가 되었다. 싸움의 연속에서 알았다. 그들은 진짜 모른 건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수십 년을 명절날의 엄마를 보았고 또 엄마가 된 내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안 해봤으니까. 안 당해봤으니까. 남편이 혼자 우리 친정집 삼촌 집에가 제사음식을 해 본 경험은 없으니까.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니 아내인 우리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당연하게 여긴 것. 그들도 명절날만 되면 무시무시한 싸움닭으로 변하는 아내가 처음이니까. 명절날 제사음식은 남편과 아내가 같이 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제사의 다른 방식도 있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까.



그깟 것이라고 말하는 음식의 일부를 남편이 하기 시작했다. 쪼그려 앉아 기름 냄새를 맡으니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띵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자꾸 전기프라이팬의 불을 높인다. 산적이 겉은 타고 안은 덜 익는 신의 경지를 연출했다. 명절 때마다 먹는 음식을 만드는데 공평하게 참여한 후로 그깟 것이라는 언어가 사라졌다.


요리 노동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언어와 내게만 강요하는 희생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지금은 나보다 더 야무지고 깔끔한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제사 음식이 아니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니 양도, 개수도 그때그때 달라서 훨씬 부담이 없다. 큰집과는 왕래를 끊었다. 친척들도 명절이라고 큰집으로 모이지 않는다. 행동의 언어 속에서 남편은 진보했고 지금 우리는 싸우기보다 짓궂은 장난을 건다. 산적으로 빼빼로 동시 먹기를 하는 장난. 아들도 불러서 시킨다. 음식은 먹는 사람이 같이 하는 거야. 음식 잘하는 남자가 매력적이다. 아빠 봐. 얼마나 매력적인 머리카락 없는 남자니.




나의 명절증후군은 지금 흉터만 남은 현재 완치 단계. 재발 양상은 없다. 코로나로 시동생네도 오지 않는 얌전한 명절은 또 나름대로의 <편안한 휴식>을 예고한다. 나무늘보 같은 명절을 기다린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바보 같은 아들은 지금 없겠지. 내 아들도 그런 소리를 하면 하이킥을 날릴 것이다. 며느라기들에게도 평온한 명절이 되기를. 그러나 가까이 있는 주변 언니들의 한숨소리가 여전히 새어 나온다. 절대로 5인 이상 집합금지는 풀면 안된다고. 명절증후군은 아직 ing이다.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 강화길의 음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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