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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Dec 16. 2020

어머니 우리 못살아요?

자메이카 통다리가 불러온 물음


# 우리 애기가 열이 나요.

아들이 목이 아프고 열이 나면서 가슴이 한 번씩 답답하다고 했다. 큰일 났다. 코로나 증세랑 너무 비슷한데. 검색해보니 선별 진료소로 가라고 되어 있다. 가족들과 분리를 하고 저녁 식사를 따로 먹이고 다음날 일찍 선별 진료소로 갔다.


입구에서 방호복을 입은 분들이 사전 검사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발열체크를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또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애기가 열이 나고 가슴이 아프데요.

나의 절박한 호소에 간호사도 덩달아 안타까워 했다. 애기가 어딨어요? 간호사가 아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우리 애기는 바로 내 옆에 서 있는데. 간호사 앞으로 우리 아들을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애기 여기 있어요.... 여드름 투성에 시커먼 수염이 자란 고딩2학년 아들을 보더니 간호사가 설핏 웃었다.

아, 이 녀석이 그 애기군요.


순간 민망했다. 나한테는 애기로 보여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냥 고딩처럼 보일 텐데. 내가 빅 오버를 했나 싶어 무안해졌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단순한 감기였지만  애기 소동은 오랫동안 회자되어, 딸 둘이서 어지간하게 놀려댔다.

어머님, 애기가 수염이 많이 자랐는데요.

어머님, 애기가 여드름이  폭풍 성장했어요.

요즘 애기들은 수염도 나고 여드름도 나는 가봐요.


놀리지 마. 엄마 눈에는 아직 애기라고...



# 127명 중 96등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를 하지않았다. 공부 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영어 스펠링을 쓰지 않고 보고 그렸다.

여름방학 때는 수영장이나 계곡에 놀려 다녔고 겨울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놀았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 아무도 아들의 놀이에 태클 걸지 않았다. 다치지 말고 놀아라, 우리의 잔소리였다.


127명 중 96등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성적이었다. 흔한 학습지 하나를 하지 않아서 그 정도 성적을 받아 오는 것도 참 기특했다. 여보, 저렇게 노는 걸 좋아하는 거 보니까 아들은 대학을 안 보내고 특성화 고등학교를 보내야겠어. 그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호주나 다른 유럽은 블루칼라, 기술자가 그렇게 돈을 잘 번다잖아. 배관공이랑 용접사가 돈을 잘 번데요. 아마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올 거니까 그런 기술도 괜찮지 않겠어. 공부 잘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고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걸 하면 되니까.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고 남편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니까 공부 못해도 되니까 자전거 탈 때 헬맷은 좀 쓰면 안 되겠니? 그래, 가포까지 자전거 타는데 너무 위험하다. 헬맷은 해야지. 아들이 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었다.

위에 누나들도 아무도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본인이 필요한 것들은 인강을 들었다. 시키지 않고 본인들 스스로 알아서 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밥 먹어라. 사랑한다

가끔 하는 말, 공부 대충해라.

전혀하지 않는 말, 공부해라.


중2학년 때 겨울방학 때부터 아들이 하루에 2시간씩 꼬박꼬박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거실에서 공부했다. 우리 집은 거실에 소파가 없고 아이들 책상이 모두 거실로 나와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옆에서 시끄럽게 떠든다. 모두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심지어 공부하는데 가서 건드리며 에잇 코스프레하지 말고 그냥 놀아라. 어색하다라고 놀렸다. 공부는 하더라도 가사노동은 분담해야 하므로 설거지와 청소, 재활용 쓰레기 참여는 해야 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닌것도 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인생의 전부는 어떻게 할것인가?

아들 방문 앞에 븥여준 캘리


중3이 올라가면서 아들의 휴대폰에 이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어쭈? 고등학교 1학년 때 장학금을 받더니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 한자리 숫자에 들면서 독서실에서 밤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온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엄마 자기 전에 집에 오라고! 나는 11시에 잔다.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도 어머니 먼저 주무세요. 저 안와도 어차피 주무시잖아요. 응, 그건 그렇지. 자는 건 내 인생이고 공부하는 건 니 인생이지.



# 어머니, 우리 못살아요?

코로나 시국에 고등학교 2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낸 저녁에 아들이 카트라이더를 하며 느닷없이 물었다.


어머니, 우리 못 살아요? 응... 잘 살지. 왜 못살아? 우리만큼 행복하게 사는 집이 어딨다고.

아니, 어머니 경제적으로 못 사냐고요? 아, 중위소득? 잘 살지. 중위 소득 100%는 넘으니까 잘 사는 편이지. 왜?

그럼 잘 사는 거예요? 응. 요구사항이 뭔데.

시험도 끝났는데 사실 자메이카 통다리를 먹고 싶은데 그게 다리 4개에 2만 9천 원을 하더라고요. 내가 혼자면 자메이카 통다리는 시켜 먹겠는데 식구가 많으니까 두 개는 시켜야 되는데 그럼 돈이 거의 6만 원이니까 너무 비싸잖아요.


응, 그 뭣이 자메이칸가 뭔가 시켜 먹을 정도로 잘 살지는 않아. 그건 중위소득 250%는 돼야 사 먹을 수 있어. 그렇죠. 그 정도로 잘 살지는 않죠?

응. 그렇다고 한 개만 시켜서 너만 먹을 수는 없잖아. 담에 돈 벌어서 니돈니산 해. 그럼 통닭은 되죠? 응. 2만 5천 원 안쪽으로는 가능해. 엄마도 벤츠 타고 싶은데 소나타 타는 거야.



원래 인생은 이런 거야.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사는 인생은 없어. 자메이카 통다리는 니 욕망으로 남겨. 그거 먹고 싶으면 빨리 어른돼서 독립해. 니돈니산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엄마 벤츠도 하나 사주고.


아들이 카트라이더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남편의 문자에 자메이카 통다리 주문이 떴다가 승인 취소가 되었다. 푸짐한 통닭이 배달되자 누나들과 세 명이서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금방 자메이카 통다리를 잊어 먹은 녀석은 여드름 투성인 얼굴에 웃음이 잘잘 흐른다.


어머니,  입하시죠. 됐다 이놈아 너나 많이 묵어라. 아이고 우리 어머니 삐지셨네. ~~, 기름기 묻은 입술로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달려든다. 아이구, 더럽게.  어머니  이중적이시네. 자기는  먹다가도 뽀뽀하면서. , 밥이랑 닭이랑 같냐? 아들 볼을 밀어내며 얼렁 도망쳐 나온다. 젓가락을 들고 남편이 통닭 전선으로 나선다.


흠, 오늘 또 치열하겠군.

엄마, 컵.....!!

그렇지 컵 가지러 일어나는 사이 제 닭다리가 없어지면 안 되니까. 어디서나 생존경쟁은 치열하다. 식탁에 앉아 슬그머니 자메이카 통다리가 뭔지 검색해본다.



무엇이든 부족하게 키운 상 싶다. 공부해야 한다는 녀석도 제 몫의 집안일은 하게 만들었다.

남편식으로 말하자면 그건 니 공부지. 공부가 대단한 유세냐?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나면 독서실 가고 없다. 절실함이 있어야 뭐라도 제대로 하려나.


무엇이든 해주는 부모 스타일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듬뿍 준 것은 경제적 소비 대신 육체적 스킨십이다. 사랑한다 껴안고 뽀뽀하고 어루만지고. 돈의 부족함을 이것으로 메꾼 전략으로 가성비 좋은 양육과 육아가 가능했다. 아껴야 우리 노후도 준비하니까.


공부 하든 말든 그건 네 인생이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람 인생은 대신해 줄 수 없어. 엄마아빠 노후도 중요해. 이건 우리 인생이니까.


아이들에게 이 협박이 통했던 걸까.

그러나 한번씩 자메이카 통다리 같은 사건은 나를 헷갈리게 한다. 그게 뭐라고. 먹고 싶다는 데....담에 수능후에는 자메이카로 쏴 주자.


아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들, 너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냥요. 나중에 진짜 제가 하고 싶은게 있는데 공부 못해서 못하게 되면 억울하잖아요.

그렇지. 자메이카 통닭 시켜먹고 싶은데 그 때도 못시켜 먹으면 억울하지. 그래 우리 애기. 너의 자메이카 통다리 응원할게. 근데 그것도 중위소득 100%로면 한마리 시킬수 있으니까 공부는 대충해.  오늘도 아들은 독서실로 도망가고 없다.



자메이카 통다리 대신 시킨 설렌닭도 맛만 좋은가 보다. 쏙 먹었다. 사진으로는 먹음직하다. 너 자메이카 통다리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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