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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an 16. 2021

사지 않을 특별한 권리

20대에게는 아직 어려운 일



엄마가 홀로 계시는 고향을 가기 전 늘 엄마에게 전화를 해 물었다. 뭐 필요한 거 없나. 없다. 암것도 필요 없다. 그냥 오니라. 엄마 대답은 늘 똑같았다. 그럼에도 매번 묻고 또 나는 한가득씩 사들고 날랐다. 주로 엄마의 간식, 빵이나 바나나 같은 연한 먹거리와 반찬들. 입이 짧은 엄마 냉장고에는 그것들이 오랫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팔순이 되면서 엄마는 옷을 사지 않았다. 죽으모 짐만 될것인디 뭐하러 사냐. 자신의 내일을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밥 먹자는 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무덤덤했다. 걸치고 갈 옷 한 벌이면 되지.



지금 존재한다는 것외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깨달음은 노년기에 덤으로 오는 건지도 몰랐다. 엄마는 소비하는 행위를 잊은 듯 살았다.



필요한 것이 가장 적을 때라야 신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제임스 밀러의 말이 정확했다. 엄마는 죽음과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 가까워진 것이다.




오늘도 문 앞에 택배는 놓여있다. 문을 후르룩 두드리고 엘리베이터를 잡는 바쁜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눈 오고 날이 안 좋을 땐 택배라도 그만 좀 시키지. 말을 했는데도 까먹었는지 아님 그전에 시킨 게 늦게 도착한 건지. 이십 대인 딸 둘은 택배가 자주 온다. 폭삭한 비닐은 분명 옷이다. 그만 좀 사. 나도 모르게 고함을 빽 질렀다. 오랜만에 시켰다고. 잔소리 좀 하지 마. 잔소리라는 말에 열 받아서 택배 봉지를 딸 방으로 휙이익 던져버린다. 이 박스는 뭐야. 보니 남편의 영양제다. 딸들은 미모에 남편은 건강에 물욕의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거지. 오늘 진짜 잔소리 좀 해봐?


20대는 모른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이쁜지

30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고운지

40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50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젊은지

60대는 모를 거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멋진지

70대는 모를 거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

80대는 모를 거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신에게 다가갈지.



참는다. 내가 산 책들도 읽지 않아 장식용으로 고이 모셔져 있는 터, 현재 책장 파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 양심에 찔려 참는다. 아직 그녀들은 신보다 남자에게 관심을 둘 날이 많으니 더 참는다. 내외적인 성숙의 시소를 가려 탈 줄 아는 날이 오기는 오겠지. 치장하는 옷만큼이나 마음의 치장도 좀 하면 좋으련만. 쇼핑, 맛집, 넷플, 왓차. 게임 그리고 예능의 MSG에 빠져 집콕의 시대에 체바튀만 도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고를 조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것이 전통인 아테네에서 석고 조각을 거부하며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대리석상을 만드는 조각가는 대리석 덩어리를 사람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스스로를 사람 아닌 대리석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생을 감내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의 삶이 위대했는지, 테스 형이 위대했는지. 조금 더 내적 성숙의 측면으로 딸들의 걸음이 다가가기를 바란다.

외모만 반듯하고 그럴싸한 사람이 아니라 소비에서도 자신의 줏대를 가진 사람. 꼭 필요한 소비만을 선택하는 일은 자각하는 사람이 가지는 특별한 권리.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사지 않을 권리. 물욕의 팽팽한 끈을 놓을 권리. 아직 이르겠지만 딸들을 바라보는 나는 그런 조바심이 난다.


대리석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고생을 감내하는 사람, 내적인 성숙에 더 몰두하는 사람. 자신의 소비를 통제 할 줄 아는 사람.





재활용이 늘었다. 중간에 한번 재활용을 버려도 금세 쌓인다. 달라진 재활용 배출 방법 때문에 더 손이 많이 간다. 박스에 붙은 비닐테이프는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우유팩도 찢어서 버리려니 그것도 일이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고집을 부려야지만 된다. 과일을 사러 갈 때도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하나. 나 혼자라도 이렇게 하다 보면 지구는 과연 지켜질까.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나만 개고생을 하는 건 아니겠지.



자각하더라도 실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막상 내게 어떤 불편함으로 오면 익숙하게 변명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데 뭘. 나만 그런 게 아닌데 어때. 그러며 남편의 영양제 박스를 째려본다. 그니까 안 시키면 쓰레기도 덜할 텐데. 정** 박스는 단단해서 펴기도 싶지 않은데.


내가 정간장 사장이면 그 단단한 박스 만드는 비용으로 재활용 박스를 만들어 운영한다. 재활용 박스를 매장에 갖다 주면 포인트를 주면 될 터인데. 사람의 건강은 지구가 건강해야 지켜집니다. 소중한 건강을 전하세요, 정간장


기업을 변화시키는 건 소비자니까. 아직 우리는 더 똑똑하고 성숙한 소비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개념 있는 소비를 개념 있게 할 권리를 터득하는 지혜. 자라고 있겠지. 그렇겠지.




아이보리 니트 조끼를 입고 빙그레 내 앞에서 한 바퀴를 도는 딸을 보며, 어휴 이쁘다. 너는 뭘 입어도 이뻐. 엄마니까 그런 거야. 아니야. 진짜라니까. 다른 엄마들도 다 딸들보고 이쁘다고 한데. 어.... 그래? 엄마들 눈만 그런 거야. 엄마들 눈에는 마법이 걸려 있거든. 자기 딸은 다 이뻐 보이는 마법. 어... 그런가.


엄마도 내게 만날 이쁘다고 했다. 아이고 이쁜 우리 딸...... 그 이쁜 딸이 보고 싶을 때가 되었다. 곧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마법은 아직 진행중이니.



눈발을 뚫고 문앞까지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참고도서 <성찰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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