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을 닮고 싶을 때가 있다

시장과 밭과 선풍기와 파리채

by 양아치우먼

모티브> 친정어머니가 살았던 삶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떠나온 삶이지만 아직도 남해 고향에는 이런 닮고 싶은 살아감이 존재합니다.



마 중


비가 오는 날마다

할머니는

삼거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세시차가 있고

다음은

다섯 시 반이었다

헌 우산은 쓰고

새 우산은 접고

세시차에 안 오면 다음 차가 올 때까지

비에 젖어,

해오라기처럼 서 계시었다.

- 김용화




그녀들이 있는 풍경

남해 버스터미널에는 이맘때쯤, 추석을 앞둔 한 달쯤 장을 본 할머니들이 넘쳐 났다. 그녀들은 버스 출발이 2시간 후라도 터미널 간이 의자에 앉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장바구니(어머니는 그것을 제자바구니라 불렀다) 안에는 추석 때 자식들에게 보낼 참기름 병, 또는 자식들에게 먹일 쓰대나 민어같은 말린 생선들, 혹은 생물들-살아 있는 해산물을 말한다-이 한가득 넘쳐 나 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고소한 내음이 머물기도 했다.


그기서 옆 동네의 온갖 소식이 떠돌기도 했는데, 누구네 집 아들이 이번에 서울 청와대를 들어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했다 더라. 누구네 집 며느리가 어디 농협에서 일을 하는데 버릇이 없다더라,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어느 집과 또 어느 집은 사돈이 되기도 했고, 또 어떤 집은 싸움이 나기도 했으나, 그녀들이 점점 나이들어 감에 따라 비좁던 버스터미널 간이 의자는 점점 한적해졌다.


도시에서 시집 온 며느리는 시댁에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먹일 도시락을 가져와 자신의 차 안에서 아이들 식사를 해결 한 뒤 하룻밤도 자지 않고 온 그날로 양 떼 몰이하듯 시댁을 다녀 간다고 했다.

"와, 그란데?"

"시엄니 음식이 더럽다고 그란데요."

"아이고 숭칙헌 년이여, 그람씨로 우째 지 서방허고는 사는가 몰라..."

그렇게 동네에 소문이 나면 그 집 할머니는 허전함에 그런지 낯부끄러워 그런지 한 동안은 우물가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다가, 옆 집 할매가 찾아가 자기 자식 흉이라도 보면 그걸 용기삼아 다시 우물가에 나와 놀곤 했다.


느리고 기다리고


명절 때면 본능적으로 하루에 몇 번 없는 시내버스를 타고 끄실개(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유모차 같은 것: 친정엄마는 그것을 끄실개라고 불렀다)를 끌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몇 바뀌 돌아 아들이 좋아하는 문어를 사고, 딸이 좋아하는 새우를 사고. 그렇게 시장바구니가 한가득 넘쳐나도 고집스럽게 또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 미련함, 그런 면에서 그녀들은 환경을 보호하는데 최적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거다.


버스가 2시간 후면 2시간을 기다리고 3시간이면 3시간을 기다린다. 젊은이들처럼 음악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무작정스러운 기다림을 목격할 때마다 그녀들은 대체 그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지만 그건 별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틀렸다고만 할 수도

없기에...., 우리가 가끔 멍 때리기, 아무것도 안 하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열광하는 걸 보면, 그녀들의 버스 기다리기는 멍 때리기에 가깝지 않았겠는지.

할머니들, 그녀들은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것만으로 지구를 지키는 최고의 수호자다.

여기서 할머니들에는 운전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므로, 할매로 규정하고 싶다. 보통 촌에 사는 할머니들을 할매라고 하지 않나? 모르겠다. 남해 촌에서는 할매라고 부르니.


플라스틱 제로는 저절로


그녀들은 주로 소비를 재래시장에서 한다.

마트는 비싸다는 인식이 아주 깊이 박혀 있다.

할메들이 시장을 가는 이유는 가격 흥정의 묘미 때문이 아닐까. 신선한 것,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매력때문에, 가성비 좋은 물건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메들이 시장을 보는 루틴은 비슷하다.

일단은 그냥 시장을 몇 바뀌 돈다.

옆에서 보면 무심히 지나치는 것 같은데 나름

눈썰미 있게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두 번째 돌 때 쯤 선택을 하되 가격을 흥정한다.

"다른데 보다 크기가 빠지고만."

"아이고 할메, 이 정도믄 실허제."

"2천 원 깎고, 쪼매만 줘보소."

"남는 것도 없는디.."

희한하게 파는 할매는 정확하게 그 양을 가늠한다.호주머니(사투리로 줌치)에서 꾸깃한 돈을 꺼내

지불한다. 그렇게 시장을 돌다가 누군가 할메를

부르는 소리, 을포댁이라 부르면 그기로 달려가

흥정에 한몫 끼인다.

"아짐매, 오늘 이거 좀 사가소. 남는 기라 떨이하고 들어갈랑게."

그럼, 을포댁은 조금 머뭇거리다 물건을 한번 보고는 조금 도도한 척 튕기다가 결국은 그것들을 다 사준다. 매매자와 매수자 사이에 일종의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가능하다.


할메의 시장바구니에서는 기껏 해봐야 까만 비닐봉지 몇 장이 쓰레기로 나오지만, 그것들은 다시 잘 뭉쳐져 재활용된다. 하지만 마트에서 장을 본 우리는 최소한 몇 개의 박스와 플라스틱들이 존재한다.

재래시장을 100% 활용하는 할메들은 지구를 지키는 최고의 수호자가 되는데 손색이 없다.


콩밭매는 아낙네

할메들은 몸져누울 때까지 밭을 일군다. 자급자족의 생활에 많이 가깝다. 상추, 배추, 고추, 가지, 오이, 깻잎, 부추, 열무, 호박, 머구잎, 고구마 줄기, 고춧잎, 감자, 고구마, 마늘, 참깨, 토마토... 아, 또 뭐가 있었나? 그녀들이 밭에서 키운 것들이 자식들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녀들은 굽은 허리로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 고랑을 일구며 고구마 순을 놓고, 또 다음날은 배추 모종을 밭에 갈 것이다. 그때 한쪽은 열무씨를 뿌리겠지.


그녀들의 노동은 우리 정서를 순화하고 공기를 정화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환경이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점점 밭농사가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들이 더 이상 열무씨를 뿌릴 수 없을 정도로 노령화되었거나 혹은 다음 생으로 이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칠갑산을 만들었던 밭농사가 지구를 지키는 데 한몫했다고 나는 가늠한다.


심플함의 대명사

평생을 몸빼 하나로 살았다. 필요한 물건이 별로 없다. 화장품도, 외출복도 따로 필요치 않으며 치킨이나 햄버거도 먹지 않는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니 전기 소모량도 많지 않다. 손이 튼다고 핸드크림을 바를까, 얼굴이 탄다고 선크림을 바를까. 여름이면 할메들에게 필요한 건 선풍기와 파리채, 겨울이면 전기장판 하나였다. 디저트를 먹을까? 커피나 뱅쇼를 마실까? 소비의 스펙트럼이 우리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는 것.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기에는 부적응스럽고, 그냥 체득화된 스타일. 소비를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부르고 싶다. 지구를 보호하는데 소비하지 않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이런 삶도 닮고 싶을 때가 있다.

닮아야 할 때가 있다.




# 삶의 뿌리는 소박하다. 잘난 사람의 태생을 쫓아가도 결국은 어느 시골의 촌부(시골 여자).

마른날, 비내릴 때 나는 흙내를 아는 사람은

고향을 어딘가에 품은 사람이다.


투박하고 굳은살 박힌 손으로 여린 내 얼굴을

쓰다듬고 좁은 내 등을 쓸어 주면

허기진 시간이 꽉 채워졌던 기억들.

줌치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기어이 손에 쥐어주며, 끼니 굶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다독여주던 살가움들,

그런 것들은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두 개의 모정이 있다고 믿는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정.

어머니는 시행착오가 있는 풋내나는 모정이라면

할머니는 홍시처럼 달고 보드라운 모정이다.


코로나 이후로 그녀들 곁에 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

추석을 한 달쯤 앞두고 있는 지금 안타깝고 슬프다.

그녀가 짜 준 참기름만큼 고소한 시간을 가져

올 수 없다는 게 슬프다.


그래도 우리는 그녀들에게 서슴없이

사랑한다 말하기를.


내 생은 점점 할메들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그녀들의 하루가 예사롭게 보이질 않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런 삶을 닮아가는 연습을 이제는 해야 할듯.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해운대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택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