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아치우먼 Oct 15. 2020

그때, 궁지에 몰렸다

몸무게도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야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방심한 가정방문

타 지역에서 전입 온 여성이었다. 나이도 비교적 젊었고 아이도 있어서 상담 약속을 잡았을 때 집으로 와 달라는 그녀의 말에 선뜻 알겠다고 했다. 찾아간 집은 13평 정도 되는 원룸이었다.


이제 막 이사를 와서 그런지 집이 조금 정신이 없었다. 침대와 씽크대 시이에 있는 탁자 위 밥솥과 수저통 주방기구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그녀가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물었고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일을 했다고, 아주 수다스러웠다. 느닷없이 그녀가 보여주는 그녀의 손목에는 어지러운 칼자국들이 흉터로 남아 있었다.


자살하려고 한... 열 번은 넘게 그은 거 같은데


그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어지러운 그녀  손목 흉터를 보는 순간, 쏴한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녀가 칼로 그은 자신의 손목을 보여 준 건, 나는 죽는 게 무섭지 않다. 그러니 너도 죽일 수 있다는 의미.


나, X됐어....


그녀가 한 말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저주처럼 내뱉는 말들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혼자 그녀를 만나러 오지 말아야 했다. 상담을 중지하고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한 순간,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 현관문을 잠겄다.


이사온다고 돈을 다 써버려서 차비가 없어요. 만원만 주세요.

아... 만원. 하필 지갑을 안 들고 나왔다. 어떡하죠? 제가 나오면서 지갑을 안 들고 나왔는데...

저한테 돈 빌려 주기 싫어서 그런 거죠?

진짜라니까요, 지갑이 없어요. 그때 내 목소리가 떨렸을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식탁 위에 있는 밥솥을 손으로 확 밀었다. 밥솥이 쿵르쾅 쏟아졌다. 내 심장도 그렇게 쿵하고 내려앉았다. 돈이 없다는 내 말을 그녀는 믿지 않았다. 제가 돈 만원 빌려달라니 우스워 보이죠?

잠깐만요... 하는 수 없이 들고 있던 가방을 다 엎어서 지갑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호주머니를 다 까발려 보여주었다.

내 눈에 들어온 부엌칼, 칼이 수저통 옆에 나란히 있었다. 재빨리 13평의 공간을 눈으로 훑었다. 조그만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오로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현관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다. 어떻게 해요, 아무것도 없는데..

잠깐만요, 내가 다시 사무실을 가서 돈을 가져다 드릴게요.

거짓말!


나의 어떤 말도 믿지 않았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어떻게 달래지? 상담 매뉴얼에 뭐라고 나왔더라? 머릿속은 하얗고 심장만 자꾸 콩콩거렸다. 일단 비위는 맞추자. 자극은 말자... 흥분한 그녀가 마구 말들을(주로 전에 살던 담당공무원에 대한 험담이었다) 쏟아냈다. 우르르... 우르르.. 듣고만 있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침착해. 마음속 주문을 외우며...


그때  기적처럼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는구나!)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주민센터였다. 급식 쿠폰이 나왔다고요?


그녀가 전화를 받으며 나와 등을 돌리는 순간, 재빨리 현관문을 제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보통은 느린 사람인데 이렇게 날다람쥐처럼 날래다니? 아이 셋을 두고 죽을 순 없잖아. 비겁하게라도 일단은 살고 봐야지.


당신의 전화 한 통이 나를 살렸어...

수미야 고맙다.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재빨리 원룸 밑에 주차된 차에 들어와 차문을 잠그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동료에게 SOS 쳤다.


정신과 치료는 내가 받고 싶었지만

동료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주민센터와 기관에 모든 사실을 알렸다. 내가 그녀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한 것은 그녀가 젊은 여성이며 같은 여자이니 괜찮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부른 결과였다. 그녀는 극도의 신경불안장애를  가진 환자였다. 자신과 대화하는 누구나를 공격하고 의심하고 괴롭혔다. 30분이건 1시간이건 전화로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며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그녀를 보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숨 막히던 13평의 공간, 칼이 보였던 순간으로 들어갔지만 상담사로 처리해야 몫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정신과 치료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사무실로 불러 상담을 했다.

선생님, 정신과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그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만  숨기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병원 치료를 거부하시면 저희가 도와 드릴수 있는 게 없어요.


그녀는 흥분하다가 도와준다는 말에 반응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요?

선생님이 느끼는 생계에 대한 불안, 걱정... 저는 선생님을 도와 드리려는 겁니다. 그녀의 눈빛이 점점 분노를 내려놓았다. 말투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상태는 다소 진정되었다.


6개월 동안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그녀 때문에 제일 상처를 받은 것은 그녀의 딸이었다. 아동학대가 일어났고 관계 분리 조치를 했지만 법의 한계는 있었다. 그녀가 친권을 행사하면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었다. 여러 방면의 복지체계를 가동하는 가운데 그녀는 시청과 주민센터와 고용센터 모든 기관에서 블랙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그나마 상태가 호전된 것이 다행이었다.


마음의 무게는 내 마음이 잰다

그녀와의 상담으로 불면증이 생겼을 만큼 마음에 많은 생채기가 났다. 갇힌 공간에서의 공포가 문득문득 덮쳐왔다. 한동안 내담자를 마주하기가  겁났다. 한 달여 정도를 전화상담으로 대체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자신이 없어졌다. 누구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 자주 등산을 다녔다. 심호흡을 하며 내 마음에 말을 걸었다.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그때를 기억할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마음의 무게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고, 상처도 다 아물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완전히 무뎌졌는지 모를 일이다. 보이지 않으니 무심할 수밖에 없겠지만 거꾸로 보이지 않으니 더 민감하게 대해야 하는 게 마음이란 게 아닌지....



중력으로도 잴 수 없는 마음의 무게는 남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재는 것이다. 무거운 것은 무겁게 온다. 내 마음에 부대끼고  불편함이 있다면 그건 진짜 무거운 것이다. 그때는 나를 쉬게 하거나 내려놓는 특효약을 찾아야 한다.

몸무게에 민감한 것보다 마음의 무게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 마음의 무게를 자주 측정해야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는다. 짓눌리며 사는 건 결코 행복하지 않으니. 가벼워야 하는 것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복원하는 퀘렌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