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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16. 2020

동화책이 나는 제일 어렵다.

엄마의 관찰이 아이의 빅데이터를 만든다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아이가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에 대해 엄마가 먼저 결정하는 것은 책에 대한 아이 호기심을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편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책을 빌려와 나에게  읽으라고 권유하는 것보다 더 최악이다. 남녀의 갭보다 세대의 갭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과자를 고르듯 책장 앞에서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엄마는 충분히 기다려 주면 좋겠다.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면 빈손으로 와도 괜찮다. 읽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


초여름이었을까, 아줌마가 쏘아 올린 공(아쏘 공) 모임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옆 회의실에서 10명이 넘는 엄마들이 똑같이 책 읽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어떤 책으로 모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유리로 된 칸막이를 살짝 흘겨보았다. 책상 위에 동화책 서너 개가 각자 그녀들 앞에 탑을 쌓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들은 진지하고 꽤 오랜 시간 토론하는 듯했다. 아쏘공은 화이트호스 책을 두고 눈물바람이었는데.



동화책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동화책은 어른이 지었지만 아이들의 시선과 상상력과 감성과 촉감의 크기를 가지고 만들어진 책이다. 똑같은 동화책을 읽어도 엄마의 느낌과 아이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신혜선 씨가 펴 낸  <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에서는 아이의 생각과 어른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화책 강아지똥>은 모든 존재의 가치에 대해 잘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엄마들은 극찬하지만 아이들에게 똥은 땅속에 있다로 느낀다. 강아지똥을 본 아이가 물어야 한다. 엄마 근데 왜 아파트에서는 강아지똥을 비닐에 싸서 버려야 한다고 방송해....? 그럼 엄마는 <동화 강아지똥 >과 현실에서의 강아지 똥을 잘 비교해서 설명해주면 된다.


동화책을 읽을 때 어떤 아이는 글자(내용)에, 또 어떤 아이는 글보다는 그림에, 또 어떤 아이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하는 상상력에, 각기 다른 포인트로 빠져든다. 같은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 여러 번 걸쳐 봐야 아이가 동화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른들도 읽었던 책을 며칠 만에 다시 뒤적거리면 그때 이런 문장이 있었나? 라며 새롭게 밑줄 긋는 일도 다반사다. 아이들은 동화책에 그려진 꽃을, 오늘 보고 꽃을 향해 날아오르는 한쪽 귀퉁이 나비는 모레 본다. 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며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점차 키워가게 된다.



동화책 읽는 엄마모임은 엄마인 나를 위해 참여하기를....

동화책 중에서도 어른에게 감동을 주는 책도 많다. 엄마가 동화책이 좋아서 읽는 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른들도 동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문제는 엄마가 좋다고 여기는 책을 아이에게 안긴다는 것이다. 아이의 호기심이 닿기도 전에 엄마의 장 바위에 이미 아이 동화책이 한가득인 것이 문제다. 동화책 읽는 엄마모임은 아이가 커가면서 독서모임으로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감성과 창의성이 중요하다며 또 독서모임의 커리큘림은 책 읽고 상상력 테스트까지를 한다.


한때 독서지도사 공부를 하며 샀던 <창의적인 독서지도 77가지> 책의 기획자가 쓴 글을 옮겨본다.



오늘날 독서수업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독서 행위 자체가 저자와 어린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 교사가(엄마가) 중간에 위치해서 이를 매개한다고 하는 행위 속에 책을 바라보는 교사(엄마)의 관점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개입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의(어린이)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더구나 그러한 개입의 행위가 일종의 강제된 학습과정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은 책을 하나의 학습교재로 인식하게 되고 그림으로 인하여 책을 즐기는 대상이 아닌 강제된 학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교사(엄마)의 역할은 아이들 스스로 독서 행위를 즐기게 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단지 최소 개입만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의 첫 챕터는 철학 동화와 함께 하는 독서수업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아이 셋을 키우며 특출 나게 잘 키워보려고 바쁜 와중에 독서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몸부림에 발광까지 했던 엄마였다. 뻔질나게 도서관을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영어로 된 책을 골라왔다. 알파벳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알고 보니 영어는 검은 줄이고 그 책에 그려진 빨간 차가 이뻐서 골라왔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엄마가 따라갈 수 없다. 책에서 만큼은 아이가 호기심을 잔뜩 부릴 수 있도록 엄마가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엄마의 역할은 참견이 아니라 관찰이다. 엄마의 관찰이 아이의 빅데이터를 만든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가는 것,

엄마는 엄마 책을 고르고 아이는 아이 책을 고르고


설사 당장 그럭저럭 한 책을 골랐다 하더라도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의 탑을 쌓는다. 그게 바로 아이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엄마의 관찰이 아이의 빅데이터를 형성한다. 엄마의 참견이 아이에 대한 정보 오류와 왜곡을 가져오지 않도록 참견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안심할 것은 나쁜 동화책은 적어도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없다.


동화책 읽는 엄마 모임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가야 한다. 엄마들과의 수다로 스트레스 발산도 필요하며 동심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힐링의 한 방편도 된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스스로 자랄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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