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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7. 2020

삼대가 함께 사는 방법

가족이라는 돌탑



사람들은 길을 묻듯 나에게 묻는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불편하지 않아요? 쉬지 않고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왜 그런 적이 없겠는가? 찜통더위에 민소매 옷 하나 마음대로 입지 못할 때, 세 아이가 돌아가면서 아플 때, 벌어도 벌어도 월급날 통장 잔고가 통장에 스쳐만 지나갈 때,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만날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다 오는 가뭄처럼 한 번씩 오는 몸살처럼 그럴 뿐이다.


시부모님과 아이 셋을 합해 총 일곱 명의 식구, 80대부터 10대까지 삼대가 걸쳐 한 집에서 25년째 살고 있다. 매일 전기밥솥의 밥을 한통씩 해야 하며 냄비 한 그릇 가득 국을 끓여도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바닥을 보인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통에 설거지가 산더미다. 한 달에 과일값만 보통 20만 원이 들어간다.


일곱 명에겐 나름대로 형성된 패턴이 있다.


# 자기 밥은 자기 손으로

며느리인 나는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리지 않는다. 봉여사가 밥과 국을 해 놓으면 자기 스타일에 맞춰 각자가 밥을 차려먹는다. 봉여사와 달리 시아버지는 아침을 늦게 먹는 스타일이라 자신이 일어나서 밥을 직접 차려 먹는다. 주말에도 직접 식사를 챙겨 드신 후 교회를 나간다. 그때 나는 늦은 잠을 보충하고 있다. 끼니때마다 밥 차려 주면 어떻게 같이 사노? 편한 대로 하는 기다. 봉여사의 말이었다. 시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었다. 출근하거나 학교 가는 사람은 비슷하게 밥을 먹지만 그 나머지는 각자의 시간과 일정에 맞춰 직접 밥을 차려 먹는다. 일단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지니 같이 사는 게 크게 불편하진 않다.



# 각자의 역할 규정

25년째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엉뚱하게 내가 착하거나 시부모님이 재산이 많거나는 전혀 아니다. 우리 일곱 식구에겐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정해져 있다. 25년의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자기 역할로 먼저 찜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낙찰받기도 해서 각자의 무게를 나눠지고 있다. 시아버지는 재활용 쓰레기를 담당하고 봉여사는 밥과 빨래를, 남편은 집안의 고장 난 물건들을 수리하고, 매주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은 집 대청소를 담당한다. 대청소 때 군기반장이 내 역할이다. 각자의 방은 스스로 청소한다. 설거지는 1회당 2천 원의 보상이 주어진다. 아무도 설거지 지원자가 없을 땐 내가 설거지를 담당한다. 대청소 전까지 거실이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청소기를 밀지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은 아무리 엉망이라도 간섭하지 않는다. 방주인이 치우고 싶을 때 스스로 알아서 치운다.


# 식탁 토론은 가열차다

자주 징그럽게 많이 싸우기도 한다. 나와 봉여사가 미묘한 감정의 꼬투리를 잡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로 편을 나뉘어 다투기도 한다. 아이들끼리 머리채 잡고 싸우기도 하고 남편과 내가 왁자지껄 싸우기도 한다. 아이들과 아빠가 사소한 것으로 다투어 삐지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1대와 2대가 싸우고 2대와 3대는 싸우지만 1대와 3대가 싸우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싸움 끝에 감정의 꼬리를 달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의 법칙이다. 많이 싸우다 보니 하루정도면 누군가가 중재하고 누군가가 사과하면서 훌훌 털어버린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또 하하호호 떠든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숟가락 같이 부딪히면서 찌개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무엇이든 말끔해진다. 그럴 때 다들 너무 목소리가 커지면 엘리스가 갑자기 식탁 위로 얼굴을 내밀며 말한다. 자, 우리 이제 속닥속닥 이야기하자고. 속닥속닥. 그럼 또 모두 목소리를 낮춰 속닥속닥 말한다. 의견 충돌이 없을 땐 그렇게 속닥속닥 전법이 통하지만 의견이 충돌할 때 정말 나는 귀마개를 한다. 그럴 때는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빨리 밥을 먹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어찌나 다들 목소리가 큰지 봉여사의 표현에 의하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이다.


# 가사노동의 중심축은 봉여사

그래도 일곱 식구 중 가장 큰 중심 돌 역할을 하는 건 봉여사다. 밥은 가사노동의 80할이다. 그럼에도 매일 다른 메뉴의 국과 반찬을 만들어내는 봉여사의 먹거리 텔링은 리스펙 할만하다.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으로 아주 흡족해하는 봉여사는 절대로 요리 못하는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너는 다른 걸 잘하잖아. 주말에 가끔씩 분식집에서 외식하거나 야채쌈이 있는 밥을 사주면 봉여사는 아주 좋아한다. 그때는 봉여사를 쉬게 하는 타임이고 다행히 봉여사가 고기를 못 먹는 의도치 않은 비건이라 외식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양아치 며느리도 그 정도는 센스 있게 소비할 줄 안다.


# 각자의 돈주머니 소유

우리는 각자의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경제력이 가족 구성원에서도 가장 핵심 권력이다. 누구든 각자의 통장과 소비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생활비 관장은 착한 늑대가 하지만 개인의 소비물품은 각자가 자신의 통장에서 지출한다. 예를 들어 집에서 공용으로 쓰는 화장지나 세제는 착한 늑대가 구매하지만 각자의 옷이나 가방은 본인들이 직접 구매한다. 아, 아직 고등학생인 어린 늑대는 열외이다. 아직 미성년자이므로 고등학교 때 까지는 개인의 물품도 구입해준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 바로 아웃이다. 그래서 가끔 장학금을 두고 분배의 논란이 생기지만 가족 투표로 결정한다. 대학생은 독립의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 우리 집 원칙이다.




삼대가 함께 산다는 건 기쁨 건 3배로 기쁘고 슬픈 건 3배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일곱 식구는 한 사람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한 사람이 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인 줄 알기에, 부족하지만 서로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고 있다.



어쩌면 역할의 무게가 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돌이 작은 돌을 받치고 또 그 돌이 더 작은 돌을 받쳐주는 돌탑의 단순한 논리처럼 그냥 서로를 떠받치며 무거운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돌탑을 지나는 바람처럼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지나갈 뿐이지 돌탑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푸릇한 하늘을 향해 소원을 바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애틋할 뿐이다. 사람들이여,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 더는 길을 묻듯 묻지 말아 달라.


# 모든 일이 긍정적인 면을 가질수는 없다. 또한 모든 면은 부정적이지 않다.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아이들은 외식을 가더라도 어른을 자리 안쪽으로 모실줄 알며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출줄 안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에게 템포를 맞춰 걸을줄 알며 자신의 것을 양보할 줄 안다. 불편해도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함께한다는 것은 같이 느끼고 같이 아프며 같이 염려하는 것이다.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따뜻한 마음, 대견함을 가지고  자랐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어설프고 낯설어서 거르지 못하고 쏟아 낸 날카로운 말과 행동을 어른들이 완충지대를 형성해 무디게 했다. 지금은 불편보다 즐거움의 크기가 더 크다. 불편도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워 지니까 남는 것은 함께하는 소란의 즐거움이다. 대가족인 우리집은 응팔처럼 왁자찌껄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흑백화면 처럼 화려하지 않은 레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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