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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8. 2020

시엄니 김치에서는 수채화 맛이 난다

생김치가 주는 풍경



청춘들의 수다를 닮은 생김치


이 맘 때쯤 시엄니 봉여사는 김장김치가 아슬하다며 생김치를 치댄다. 김치를 담근다라고 하지 않고 치댄다라고 하는 건 진짜 비닐장갑 낀 손으로 처벅처벅 양념을 바르기 때문이다. 김치 대가리를 싹둑 자르고 철철 흩어진 배춧잎들을 은색 대야에 부어 놓고 양념을 버무려 쓱쓱 치대기 때문이다.


찹쌀풀을 쑤고 멸치젓갈과 고춧가루와 매실 식초와 배들을 잘 섞어 양념을 준비한다. 그럴 때 봉여사 옆에서 이것저것 건네는 잔 심부름을 하다, 속이 노랗고 잎이 여린 갓 치댄 김치 끝투리를 맨 손으로 슬쩍 들어 고개를 치켜들고 입을 왁 벌리고 한 입 넣으면 달짝지근하고 개운한 젓갈 향이 가득 머문다.

아삭하고 갓 섞인 양념들이 앙살 부리며 서로를 어색해하는 청춘들의 소란스러운 수다 같을까. 배추와 양념이 깊이 물들지 않고 씹히면서 하나씩 입에 감겨드는 상큼함, 적당히 아삭한 배추의 살결.

양념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쪽쪽 빨고 난 뒤 봉여사에게 엄지척 하면 그때 봉여사 얼굴은 처진 눈꼬리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배시시 거만한 표정으로 변한다.


요래 묵고, 조금 있다 김장 담그지 뭐.


어시장 도매상에서 몇십 년째 거래하는 곳 멸치로 봉여사가 직접 멸치젓을 담근다. 덜컹한 비린내가 한동안 온 집에 베인다. 옷에도 멸치젓 비린내가 날까 봐 집을 나서며 향수를 뿌리기도 했지만, 김치의 디폴트를 잡는 것은 역시 멸치 젓갈이다. 때문에 냄새의 쓰나미에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 놓지만 구덕한 냄새는 며칠간 집에 머문다.

고춧가루는 오랫동안 형성된 인맥을 통해 태양초로 공수하고, 매실식초도 3년 전에 직접 담근 것을 사용한다. 봉여사는 초등학교도 안 나왔지만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신통방통한 눈을 가졌다. 멸치도 어시장을 쓰윽 돌아보면 어떤 게 신선한 건지 기막히게 알아내며 매실도 야물고 당도가 높은 걸 잘도 골라낸다. 내 눈에는 그놈이 그놈인데.

더 신기한 것은 봉여사는 어떤 요리를 하든 계량컵을 쓰지 않고 뭐든 눈대중이다. 아, 그러고 보니 계량컵이 손이다. 비닐장갑 낀 손에 젓갈을 먼저 붓고

고춧가루도 손에 먼저 붓는다. 솥뚜껑을 닮은 손이 꽤나 정확하다.


충직한 시엄니와 얍샵한 며느리

입맛이 제일 무식한 사람은 사실 나다. 찍어 먹어야 하는 양념과 채소의 관계에  무지하고, 또 그들끼리의 조합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도 않는다. 쩌낸 호박잎은 자작자작 끊인 강된장에 싸 먹어야 하고, 브로콜리는 초장에, 미역 다시마는 젓갈 양념에 양배추 찜은 막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 봉여사는 재료에 따라 양념도 궁합을 찾는다. 양념이 소스니까, 소스에 따라 원 재료의 맛이 달라지니 당연한 일이다.

봉여사는 그런 조합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또 양념 만드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양념들을 아끼지도 않는다.


봉여사는 먹거리 조합에 너무도 충직한 스타일이고 나는 먹는 일에 잔꾀를 많이 부리는 유형이다. 충직해서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봉여사에 비해 잔꾀가 많은 나는 <대충 먹자를> 입에 달고 산다. 파전을 먹어도 초간장을 요구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그냥 대충 먹어라고 협박의 눈빛을 보내면 봉여사는 어느새 양념을 만들며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그 요구를 당당하게 수용한다. 이러다 보니 음식의 주도권은 당연히 봉여사가 쥐고 있다.



가정에서 건 직장에서건 충직한 스타일이 주도권을 쥐는 것은 확실하고 또 충직한 사람이 제일 고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잔꾀로 묻어가는 스타일, 얍샵한 캐릭터. 소스가 필요하면 먹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 먹으라는 식, 아이들은 봉여사와 나를 양손에 놓고 비교하며 역시 할머니 최고를 외친다.


대충 먹어. 입맛 까다로우면 여자가 고생이야.


식구들 입이 까탈스러우면 여성이 고생인 건 불변의 진리다. 물론 지금은 반 페미적인 발언이지만 아직도 요리 비중은 여성이 절대적이니, 현실을 반영한 피셜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봉여사가 아주 코리아 정통 스타일로, 그것도 제철음식을 해 먹이는 바람에 10대 녀석들이 60대와 동일한 메뉴를 지향하고 있다. 양념게장 다리를 쪽쪽 빨며 오, 딜리셔스를 외친다.


주종목에서 승자가 짓는 미소

내 엄지척을 신호로 음, 맛있다는 탄성이 오가면 한 놈이 슬금 나와 봉여사 앞에 선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녀석 입에 김치 하나를 물려주며 봉여사 입도 같이 왁 벌어지며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 포스다. 또 다른 방에서 한 놈이 맛있어? 라며 앞에 선다. 또 봉여사가 입에 김치 쪼가리를 야무지게 넣어준다. 그때까지도 마지막 한 놈이 안 나오면 부른다. 생김치 먹어봐. 어느새 완결판은 밥 한 그릇을 차고앉은 우리다.  오그작 오그작 맛있게 먹으면 봉여사 얼굴은 뭔가 승리한 미소가 머문다. 7인의 젓가락 비행 중 한 지점을 완성한 흐뭇함과 돈 벌어 오는 며느리의 제일 약한 포인트를 자신이 메꾸고 있다는 뿌듯함이 적당한 비율로 잘 버무려진 감정의 김치라고나 할까.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순간의 감동이라고 할까. 봉여사 얼굴은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의 표정, 어떤 난관을 이겨내고 얻은 승자의 표정, 두툼한 입술이 자동적으로 헤 벌어지며 웃음이 꿀처럼 주르륵 흐른다.


끙, 허리가 아파 설거지 못하겠다. 니가 좀 해라.

어....어무이, 이러면 안 되는데... 가위바위보를 해야지. 야들도 다 먹었는데....

그라모 니는 김치 묵지 말든가?

헉?


음악 틀어라. 크게 틀어라. 뭐? 미스트 트롯? 아니!

shape of you.... 팝송으로 틀어라. 할머니 못 듣게.

어무이 저도 한 성질 하거든요. 설거지 마치고 나니 봉여사는 침대 누워서 텔레비전으로 미스트 트롯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다. 내 복수는 허무하게 끝났다. 봉여사는 나보다 확실히 한 수 위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상사에게 복수하려는 것은 뻘짓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봉여사가 매번 손으로 생김치를 찢어 밥 위에 올려 줄 것이므로, 봉여사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 집에서는 식탁 담당자가 제일 갑이므로 문을 열고 말했다.


커피 한잔 타 주까?

좋지.

그렇게 또 찬란한 하루가 저물어간다. 봉여사는 그 새 코를 씩씩 골며 잠들어 버렸다. 찐 찐찐이야, 영탁이 그렇게 야무지게 노래 불러도 저렇게 잘 자다니. 확실히 봉여사는 리스펙 할 만한 인물이다.


그녀와의 코위커가 형성되기까지 우리는 많이 싸우고 자주 웃었고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같은 여성으로의 연대라고 할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나 할까? 잘 익은 김치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세월이 가져다 주는 지혜는 넘사벽이다.



허구에 시달리며 또한 허구에 목마른 나는

이 긴긴 동짓달 하룻밤을 아름다운 사색으로 채우려 했건만

나의 정직한 식욕은 실체를 원했던 것이다

시뻘건 고춧가루와 노란 마늘과 시퍼런 파와

청각과 가지가지의 재료들이

망상과 그리움과 고단함과 분노와 욕망과 회환과 무료함과 간절함과 익어가는 여인의 허연 장딴지 같은 배추의 속살에 범벅이 되어 불현듯 아름다워진 나의 크리스마스 저녁

바슐라르 선생

꿀꺽 침을 삼키며 날 쳐다보고 있다.

- 노준옥/ 김치 크리스마스 중에서



# 제목 < 김치에서 수채화 맛이 난다>라는  표현은 정세랑 소설 피프티 피플의 한 문장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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