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전체 2등이면, 자기 병원에서 모든 과 갈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자기 병원 안 가고 우리 병원 왔지?"
"그러게. 그래도 2등이니까 특별한 결점? 없으면 뽑자. 오케이?"
"오케이."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나와 우리 동기 6명은 가정의학과 2년 차 후반으로 내년에 새로 들어올 신입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면접을 진행하고 있었다. 8명 모집에 20명이 지원해서 경쟁률은 2.5대 1이었다.
가정의학과는 인기가 없는 과이다. 가정의학과는 소아에서 노인까지, 피부과에서 내과까지 모든 사람, 모든 질환을 다루는 일차 진료의, 주치의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주치의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각과 전문의를 언제든 만날 수 있기에 가정의학과의 위치와 위상이 애매모호하다.
그런 가정의학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2 부류이다.
첫째, 전문의 자격증을 따긴 따야겠는데, 그나마 수련 기간 동안 편한 곳을 찾는 의사.
둘째, 특별한 소신이 있는 지원자(다방면에 흥미가 많은 사람, 스페셜 리스트보다 제너럴 리스트를 꿈꾸는 사람 등).
다만 내가 수련을 받고 있던 OO대 가정의학과는 우리나라 가정의학과 역사를 세웠다고 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다. 가정의학과는 일반적으로 수련이 편하지만, OO대 가정의학과는 수련이 혹독했다. 1년에 200일가량 당직을 섰고, 정형외과 수술방부터 중환자실 및 호스피스 환자 치료를 맡아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전국 가정의학과가 미달일 때도, 내가 속한 OO대 가정의학과는 항상 경쟁이었다.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 3년간 일할 의국 후배를 뽑는 자리였다. 선발 기준은 성적, 인품, 가능성, 외모 따위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혹독한 수련 기간 동안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그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면접을 통해 중간에 포기할 사람(일명 중포자)을 걸러내고, 3년간 버틸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1년 차가 수련 중간에 한 명이 그만두면, 남아 있는 사람이 일을 나눠서 해야 한다. 안 그래도 힘든데, 일이 더 증가하다 보니, 도미노처럼 다른 1년 차가 연이어 그만둘 수도 있다. 1년 차가 모두 그만두면 , 1년 차가 하던 일이 2년 차, 3년 차로 올라온다. 그뿐만 아니다. 중포자가 나오면, 다음 해에도 그 병원 그 과에 지원하는 걸 꺼려한다.
간단하게 군대로 설명하면, 내무반에 병장과 상병만 가득하고 일병이 1명밖에 없는 내부반에 이등병으로 지원하는 거라고 할까? 그 누구도 과장과 부장만 여려 명인데 대리는 없는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 거기다 앞으로 후임이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면 더더욱 입사하고 싶지 않다.
의사들은 레지던트가 숭숭 비어 있는 병원의 특정과에는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한번 미달이 나기 시작한 흉부외과, 산부인과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 영원히 미달이라고 봐야 한다. 8월에 한 번, 2월에 한 번 중 포자를 채울 수 있지만 성형외과나 인기 있는 특정과를 제외하고는 그 또한 채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레지던트 한 명이 그만둔다고 하면, 그 과 사람들이 레지던트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물론 관둔다고 한 의사 부모님에게 전화까지 하여 설득을 한다. 도망간 노예를 잡으러 다니는 추노처럼 정말로 의국에서 그만둔 사람을 잡으러 나선다. 나도 1년 차 말에 동기가 한 명 그만두려고 하는 바람에 졸지에 추노가 되어 동기가 사는 집을 찾아야 다녀야 했다. 나이 삼십 넘어서 가출한 고등학생 찾는 것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을 회사에 다시 나오라고 설득하는 모습이란. 그것도 의사가.
그러니까 성적, 인성, 외모, 재능 다 필요 없고 수련 기간 동안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의사를 뽑아야 한다.
수련을 받다가 그만두는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1. 몸이 너무 힘들어서
1년에 절반이 당직이었다. 한 달에 400시간(지금은 많이 줄어들어서 340시간)을 일하고, 퐁(하루 쉬고) 당(하루 당직 서고) 퐁(하루 쉬고) 당(하루 당직 서고) 이렇게 36시간 근무 후 12시간 쉬는 스케줄이었다. 그러다 같이 당직을 서는 동료가 휴가를 가면 혼자서 7일간 연속 근무를 할 때도 있었다. 7일간 하얀 형광등 아래에서 밤에 쉴 새 없이 콜을 받고 있다 보면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라는 생각도 들고, 도저히 3년 동안 이렇게 살 자신이 없어진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일하다 보면 사람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아주 사소한 일에 폭발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화를 내는 자신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혹여나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휴대폰을 끄고 잠수를 탄다.
2. 적성에 안 맞아서
막상 수련을 받아보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수련은 그렇다 치고, 수련받고 나서 몇십 년간 이 일을 할 자신이 없어진다. 열심히 설득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3. 교수, 동기, 선후배, 환자나 보호자 사이의 트러블 때문에.
병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사람과의 일이다. 사람은 좋은데 나랑은 도저히 안 맞는 사람도 있다. 모두들 당직과 피로에 쩌들어 있다 보니 예민하다. 거기다 하루 12시간, 심지어는 24시간 같이 생활한다. 동기가 벨소리가 울리는데 일어나지 않는다. 내 잠이 달아난다. 교수, 후배, 선배, 환자와 보호자는 그래도 낫다. 동기와 관계가 안 좋으면 매일이 지옥이다.
우리는 면접관이자 동시에 같이 의국 생활을 할 레지던트를 뽑아야 했다. 상병이 내무반을 함께할 이등병을 고르고, 회사로 말하면 과장이나 대리가 신입사원을 고르는 자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았다. 8명을 뽑는데 20명이 지원하여, 2.5대 1의 경쟁률로 지원자 가운데 선택할 수 있었다. (미달되는 과는 지원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눈물을 머금고 무조건 뽑을 수밖에 없다)
의사 20명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우리 앞에 있었다. 8명을 뽑고, 12명을 탈락시켜야 했다. 우리 레지던트가 먼저 고르고 나서 교수님이 최종 컨펌하는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