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Sep 16. 2021

마음속의벽

누군가 그 벽을 무너뜨리기를 바라며..

"선생님, 저는 담대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재일 씨는 귀가 순해져 듣기만 해도 이치를 깨닫는다는 이순을 넘어, 마음이 행하는 데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 고희의 나이였다. 수수하지만 깔끔한 티셔츠에 나이만 하얗게 센 머리는 단정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말처럼 단호했으나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끝으로 평소에 궁금하거나 어디 아픈데 있으세요?"

 하루에도 수십 번하는 건강검진 끝에 하는 이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로 끝내 내가 얼굴까지 붉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 

 "제가 폐에 혹이 있어, 폐 CT를 찍고 있는데 의사가 3개월 후에 찍자고 했는데 저는 6개월 후에 찍자고 했습니다."

 "네?"

  환자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담배를 몇십 년간 핀 그는 건강검진에서 좌측 폐에 1cm짜리 혹이 나왔다. 고령에, 흡연력, 그리고 폐 사진을 고려했을 때 악성 그러니까 폐암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S 대학에서 바늘을 찔러 넣는 조직 검사를 했으나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고, 담당 의사는 조직 검사 겸 치료를 위해 수술을 하자고 했다. 환자는 또 다른 유수의 병원인 A 병원으로 갔으나 다른 의사도 똑같이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을 거부했고, 그럼 의사는 3개월 간격으로 폐 CT를 찍어 관찰하자고 했으나 환자는 그것마저 거부하고 6개월마다 찍겠다고 한 것이었다. 


 "암인지, 그냥 혹인지는 원래 조직 검사로 판정하는데 1cm 크기여서 폐 조직 검사 특성상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앞선 교수님 두 분 모두, 사진 상의 소견으로 암일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그 혹을 포함한 폐의 일부를 들어냅니다."

 내가 폐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환자가 뜬금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제가 동네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검사하기 전에는 30분 걸린다더니 2시간 30분이나 걸렸어요. 엄청 불편했지만 꾹 참았어요. 힘들게 검사를 했는데, 암일 수 있으니 대학병원 가라더군요. 갔는데, 단순 용종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환자 입장가 왜 저런 말을 할까 고민했다. 

'아, 의사가 암이라고 했는데 결국 아니라서 의사를 못 믿는구나. 거기다 30분 걸린다고 했던 검사가 2시간 30분이나 걸렸고 그래서 힘들어서 수술에 대해 무서워하는구나.'

 나는 폐의 해부학적 사진을 컴퓨터로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폐 수술이라고 해서, 폐 전체를 꺼내거나 하지는 않고 1cm 크기니까 폐의 일부만 절제합니다. 여기 보이시죠? 폐가 크게는 우측 3개, 좌측 2개이지만 이게 또 여러 개로 나누어지니까 실제로는 작은 분절하나 만 제거 합니다. 그리고 전신 마취 후 흉강경이라고 해서 내시경처럼 가슴에 구멍만 내서 수술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사는 항상 남은 틀렸고 자기만 옳은 줄 안다.
그런 오만한 의사 두 명이 같은 말을 한다면, 그건 사실을 넘어 진리에 가깝다.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환자에게 설명했다. 

 "거기다 교수님 두 분이 같은 치료를 이야기하셨으니, 틀림없습니다. 무조건 조직 검사 겸 수술받으십시오."

 저는 담대합니다. 
암도 죽음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겁나지 않습니다.

 "아니, 이게 암이면 바로 수술하면 됩니다. 그럼 완치가 됩니다. 그런데 놔뒀다가 퍼지면 그땐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호미로 막을 걸 나중에는 가래도 못 막아요."

 "저는 살만큼 살았고,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암이 아니면 다행이지만, 암 그것도 폐암이면 다릅니다. 제가 호스피스 환자를 보았기 때문에 말기 암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럽습니다. 지금은 안 아파서 그런 말씀 하실 수 있지만 막상 심해지면 버틸 수가 없어요."

 하지만 환자는 계속 같은 말을 계속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환자가 떠올랐다. 배가 아파서 온, 50대 남자 환자였는데 엑스레이상 장폐색이 확실했고,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였다. 당시 나는 작은 의원에서 일하고 있어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가시기를 권유했는데, 그는 끝까지 입원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고집에 목소리를 높이다, 나는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입원 안 하시려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 2층에 올라갈 수가 없는데, 병실은 모두 2층부터 있잖아요."

  그 당시 내가 일하던 의원도 1층이었기에 그가 온 것이었다. 

 "그러면 의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세요. 응급실에서 계속 있어도 되니까요. 의사도 그렇게 해 줄 거예요."

 

 이재일 씨에게 물어봤다. 

 "혹시 뭐 수술을 안 받으려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암이면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특별히 무섭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문이 없는 벽 같았다. 어느덧 1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그의 벽을 허물기 위해 다시 한번 수술의 필요성과 수술 방법에 대해 설명했으나 벽은 여전히 단단했다. 

 갑갑함을 넘어 화가 나, 내 얼굴은 붉어졌고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다 옆에 있던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 대장 내시경 할 시간이 다 되어서 가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 번 다시 말해볼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환자를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흥분한 내 마음도 추스를 겸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말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말로는 암과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으나, 그의 행동은 암과 죽음을 무서워했다. 아플까 두려워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고, 대장암일까 무서워 대장내시경을 다시 받고, 폐암일까 걱정되어서 폐 CT도 찍는 것이었다. 나는 끝내 이재일 씨 마음속 벽을 허물지 못했고, 그의 폐 속 결절이 폐암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사가 똑같은 말을 하여, 내가 무너뜨리지 못한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벽이 끝내 허물어지기를 빌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 때문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