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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18. 2020

또 너냐,졸피뎀??????

한 유명 가수 사건과 관련하여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20대 중반의 남자는 눈이 흐리멍덩했고, 입술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헤 하고 벌어져 있었습니다. 얼굴이나 몸에는 살이 불룩불룩 튀어나와 있었고, 며칠은 안 감은 머리에 오늘 세수조차 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남자 뒤에 서 있던 20대 후반의 여자는 짙은 화장에 선글라스로는 모자랐는지 모자를 있는 대로 눌러썼습니다.

 "쟤가 누나인데, 졸피뎀 처방 받으러 왔어요.."

 접수는 남자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남자는 말을 하지 않고, 뒤에선 여자가 하고 대신하고 있습니다. 잔뜩 날이 서다 못해 가시가 박힌 여자의 목소리에 저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저는  그 여자를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누나라고는 말했지만, 남자 얼굴은 펑퍼짐한데 여자는 위아래로 길고 말랐습니다. 남매요? 글쎄요?

 "김태훈 씨, 평소에 알고 있는 질환이나 먹고 있는 약 있어요?"

 "아니, 없어요."

 여자기 얼른 대답합니다.

 "저는 환자분에게 물었습니다."

  "아, 네, 정신과 약 먹어요."

 남자가 어눌하게 대답했습니다. '역시.' 초점이 없는 멍한 눈빛과 표정이 그럴 것 같았습니다.  

 "네, 졸피뎀은 향정신성 약물이라 기존에 다니시는 정신과와 상의하셔서 처방받으세요. 저는 못 드리겠습니다. "

 "아니, 왜 안 줘요? 약 28일 치 주세요."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향정신성 약물이라 기존에 다니시는 정신과와 상의하셔서 드셔야 한다고. 정신과 가세요. 누나라는 사람이 동생 정신과 다니는 것도 몰랐어요?"

 "아니, 그래도 이왕 왔으니 주세요."

 "안된다고요. 나가세요."'

 "아, 씨."

  여자가 씩씩거리며 진료실 밖으로 나갑니다. 남자는 뒤를 따라 뒤뚱거리며 병원 밖을 나갑니다. 환자가 나가고 얼마 안가,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저 번에 저 여자 다른 남자 데리고 약 타러 왔어요. 그때도 졸피뎀 달라고. 병원 앞에서 아무 남자나 잡고 대신 약 타 달라고 그런데요."

 "아니, 그럼 진작 말해줬어야죠?"

 "..........."


 졸피뎀.. (같은 약 스틸녹스).

 수면제의 일종입니다. 굳이 정신과를 가지 않고, 일반 의원에서 처방 가능하며 현재까지 나온 수면제 중에서 가장 널리 처방되는 약입니다. 저도 수백 명은 처방한 것 같습니다.


 한 때, 유명 연예인이 졸피뎀을 먹고, 그 약 부작용으로 자살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대면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고, 불면증으로 졸피뎀을 먹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면제로 졸피뎀을 처방하기 전에 꼭 꼭 꼭 우울증이 없는지 물어봅니다. 말은 아니라고 해도, 눈빛이 흔들리거나 표정이 굳어지면 무조건 정신과로 보냅니다.

 "혹시 우울하지는 않으세요?"

 이 한 마디에 펑펑 우시던 아주머니도 계셨습니다.

https://brunch.co.kr/@sssfriend/125

 

부작용으로는 몽유병, 이상 섭식 행동이 있습니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뭔가를 했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기억 못 하는 경우가 소수에서 일어납니다. 몽유병으로 가장 흔히 하는 행동이 주로 먹는 것이라, 이상 섭식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방하기 전에 꼭 설명을 합니다.

 "환자분, 이게 재우는 약이잖아요? 그런데 자다가 일어나서 뭔가 하는 경우가 있어요. 몽유병처럼. 대게는 일어나서 뭔가를 먹더라고요. 근데 막상 자기는 기억이 안 나요. 그럴 때는 꼭 말씀해주세요. 아시겠죠?"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393


 한 번은 한 아주머니가 불면증으로 졸피뎀을 처방받으러 오셨습니다. 처방을 눌렀는데, 10일 전 다른 곳에서 졸피뎀 28일 치를 받아가셨다고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 프로그램이 뜹니다.

 "환자분, 10일 전에 다른 곳에서 졸피뎀 28일 치 받아가셨다고 뜨는데요."

 "아, 그거 잊어버렸어요."

 일단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집니다. 차트 기록을 보니, 전에도 잃어버렸다 하고는 약을 타 간 적이 있습니다. 왠지 거짓말 같습니다.

 "죄송한데요, 이게 향정신성 약물이고 저번에도 잃어버렸다고 하셔서 저는 처방을 못 해드리겠어요. 원래 드시던 병원에서 드세요."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대게는 약 먹고 잘 주무시지만, 극소수에게서 약물 의존성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정말 힘든 게 이 졸피뎀 없이는 아예 잠을 못 자게 됩니다. 거기다 한 알이 아니라, 한 번에 다섯 알, 열 알을 먹어야 겨우 잠이 드는 그런 케이스입니다. 졸피뎀은 향정신성 약물로 한 번에 28일 치만 처방이 가능하기에, 중독이 되면 28일 치를 받아도 3일이면 다 먹고 맙니다. 다른 병원에 가봤자, 의약품 안정사용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중복 처방된 기록이 떠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거나, 맨 처음 글에서 언급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자처럼 다른 사람 이름으로 졸피뎀을 처방받으려고 합니다. 한 순간에 약물 중독범죄자가 되는 경우죠.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8121021927

 5년간 무려 1만 7160정입니다. 하루에 대략 10알씩 먹은 것이죠.  저도 신문에 난 것과 유사한 사례를 목격한 적 있습니다.


 치료요? 정말 어렵습니다. 입원한 후, 졸피뎀 대신 신경 안정제를 거의 때려붓듯이 쓴 후, 며칠에 걸쳐 서서히 신경 안정제 용량을 줄여나가는게 그나마 유일한 치료로 알려져 있는데, 효과도 확실치 않습니다.


 잊을만하면, 졸피뎀이 문제가 됩니다. 이번 사건은 소속사 말대로 직원의 단순 실수이길 빕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졸피뎀을 드시고 있다면 꼭 우울증이나 의존성이 있는지 생각해보시고, 그럴 경우 정신과 진료를 받으십시오.



 의사가 자세한 진찰 없이 너무 쉽게 졸피뎀을 처방하는 것도 있어서, 반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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