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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n 25. 2021

저 보고 꼰대가 되라고요?

누군가 나에게 자꾸 윙크를 보낸다.

 작년에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학생 검진이 올해 다시 시작되었다. 30년 전 내가 국민학생일 때, 학교에서 받았던 건강검진이 얼핏 떠올랐다. 지금은 학생이 병원으로 오지만, 그때는 의사가 학교로 왔다.  

 어린 나는 친구들이랑 한 줄로 의자에 쭈욱 앉아 있었고, 의사 선생님이 쓱 한번 지나가면서 훑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예준이, 지금 아픈데 있어요?

 "예준이,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그리고 같이 온 보호자에게 

 "예준이 어머니,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나는 이 세 질문을 꼭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임신했을 때, 전 세계에서 초음파 검사를 가장 많이 할 뿐만 아니라 각종 검사를 한다. 거기다 이미 영유아 검진도 주기적으로 하고,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최소 10번은 이런 저련 이유로 소아과에 다닌다. 그런 까닭에  내가 초등학생 검진을 통해 아이에게 있는 이상을 처음 발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내가 주로 상담하는 건, 근시(0.8 이하면 안과에서 정밀 검사받으세요.), 성조숙증(여자는 만 8세 이전 유방 멍울이 만져지는 경우, 남자는 만 9세 이전 고환이 커지는 경우)와 비만과 저체중 정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준서는 턱이 두 개였다. 쓰고 있는 안경은 자꾸 흘러내려 연신 코를 찡긋거렸다. 진료실이 2층이라 겨우 한층을 걸어왔을 텐데 헉헉거렸다. '음, 심각한데.'

 키는 140cm로 딱 중간이었지만, 문제는 체중이었다. 그 나이 때 정상이 35.9kg인데 준서는 무려 54kg로 50% 이상 더 나갔다. 성인 남성이라면 172cm에 105kg였다. 체중은 100명 중 2명, 

가 비만도를 나타내는 체질량 지수는 무려 100명 아니라, 1000명 중 2등이었다. 


<좌: 체중, 우: 체질량 지수. 모두 정상 상한치인 빨간 선을 훨씬 넘었다 1)>


 "심각한 비만입니다. 100명 중, 99등이에요. 지금이야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30~40대가 되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가 생기고, 결국 성인병에 걸리기 때문에 체중 관리를 해야 합니다. 천천히 먹고, 건강한 음식만 먹어야 해요. 과자, 간식 다 끊고................ 작년에 코로나로 학교를 안 가면서 하루 종일 집에서 활동 안 하고, 먹기만 해서 살이 확 찐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길어진다. 초등학교 5학년인 준서는 듣기 싫은 지 고개를 돌리고, 엄마만 내 이야기를 듣는다. 

 "딱 두 가지. 천천히 먹고, 건강만 음식만 먹어요."

 나는 이것으로 끝을 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이가 먹기만 먹어서 살만 뒤룩뒤룩 쪄서 큰 일이에요. 아이가 씻는 거 싫어해서 막 몸에서 냄새나는데, 잘 씻으라고 해주세요."


  자기 배에서 나온 유전자의 절반을 가진 어머니가 1년 365일 말해도 안 되는 걸, 오늘 처음 보는 생판 남인 내가 한 마디 한다고 바뀔까. 거기다 지금 애가 듣기 싫어서 나를 쳐다도 보지 않는데, 그걸 나보고 하라고? 지금 나보고 꼰대가 되어달라는 말인가?

 초등학교 5학년으로 나와는 3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될까 고민이었다. 

  "준서야, 잘 들어. 지금 엄마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중요한 거지. 엄마가 널 낳았지만, 네 몸은 내 거야. 그러니 네가 어머니가 아니라 네가 네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해."

 아이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강아지 좋아해?"

 그제야 준서가 고개를 돌린다. 다행이었다. 

 "봐봐. 준서야. 우리가 예쁘고 깨끗한 강아지 보면, 막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지? 근데 더럽고 냄새나는 강아지 보면 어떻게 해? 저리 가라 그러고 물건 던지고 막대기로 찌르고 괴롭히잖아? 그지, 그러니까 항상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해."

 몸을 돌리고 있던 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강아지를 안 좋아하는 아이는 없었다. 나름 눈 맞춤에 멋진 비유였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말을 했더니,

"우리 남편, 꼰대잖아. 원래 그런 거 좋아하잖아?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개에 비유하냐?"

 고 면박이다. 

 그 외에도 아이들 엄마들은 

 "스마트폰 보면 눈 나빠지죠?"

 "오락 많이 하면 머리 나빠지죠?"

 "라면 먹으면 안 돼죠?"

 라며 "의사 선생님꼐서 확실히 말해주세요." 라면서 나에게 가끔 몰래 아이 몰래 윙크를 보낸다. 아, 윙크까지 받았으니 꼰대가 안 될 수도 없고.. 참... 



1) 출처: https://knhanes.kdca.go.kr/knhanes/sub08/sub08_04.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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