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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Oct 07. 2021

실패로 끝난 부부의사의 합동 진료

핸드폰이 잠을 흔들었다.

 집 안의 전등이 모두 꺼지자, 창 틈으로 들어온 어둠이 이불처럼 집을 덮었다. 하루가 무사히 끝나고 있었다. 그때 아내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며 빛을 토했다. 누군가 우리 가족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라면, 그것이 나를 찾든 아내를 찾는 누군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건강하셨지만, 70이 넘으셨기에 언제 어디서 아파도 이상하지 않는 장인어른? 이제 막 걸음마를 때고 한참 자신의 거리를 늘려나가는 아장아장 걷는 2살짜리 외조카가 밤에 열이라도 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젊은 처남과 처제가 교통사고라도 난 걸까? 전화벨은 나와 아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배가 너무 아파. 흑흑
 

 아내와 동갑내기인 친구, 선희 씨였다. 선희 씨 첫째 딸과 우리 딸이 같은 나이라 같이 펜션도 가서 놀 정도로 친했다. 선희 씨는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배가 너무 아파 뒹굴었다고 했다. 일단 내과 의사인 아내는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고, 응급실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와 아내는 배 안의 장기과 각종 질환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배가 아파 뒹굴 정도의 통증이라면, 요로 결석일 가능성이 제일 높을 것 같은데. 담낭 결석은 그렇게 아프지는 않으니까. 물론 담관 결석이나 췌장염일 가능성도 있고."

 "급성 충수염(맹장염)은 초기에는 뒹굴 정도로 아프지는 않은데."

 "터져서 복막염이 생길 정도 아니면, 힘들지."

 "여자니까, 자궁외 임신일 가능성도.."

 "그렇지.. 자궁외 임신인데, 파열이 일어나면 통증이 어마어마하니까. 임신 여부 물어봤어?"

 "안 물어봤어. 너무 아파해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천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그러니까, 일단 CT부터 찍어봐야지..."

 "열나면 코로나 검사부터 해서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텐데.... 열은 안나야 할 건데..."

 아내와 나는 배를 잡고 뒹굴 정도의 통증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배안의 장기는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맹장, 간, 담도, 신장, 요로, 방광, 자궁, 난소 등 끝이 없었다.

 "애들은 어떡하냐?"

 선희 씨 둘째 애가 2살이었기에 남편이 선희 씨와 병원에 가면, 둘째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게. 내가 가야 하나?"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희 씨에게 전화가 왔다.


 어, 주희야. 나 화장실에서 한 번 토하고 나서 좀 좋아졌어.
 약간 따끔하기는 한데 괜찮아.

 "????"

 "오늘 저녁에 애 본다고 5분 만에 돈가스를 먹었더니 체 했나 봐."

 "어, 그래...... 다행이네...."

 방금전까지 선희 씨가 걸렸을 병을 고민하던 나와 아내는 둘 다 머쓱해졌다. 머릿속에 있던 모든 질환들이 물거품처럼 한 순간에 사라졌다. 역시 환자는 안 보면 알 수가 없었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핸드폰이 꺼지고, 뒤이어 집 안의 전등이 꺼졌다. 잠이 어둠과 같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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