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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Oct 12. 2021

오늘의 처방전은 아이스크림입니다.

딸아이를 위한 특별한 치료

 세 살짜리 딸이 울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엄마가 내민 숟가락을 피하더니 힘껏 이를 꽉 깨물었다. 처음에 물을 한 번 마시더니, 곧 아파서 울음을 터뜨린 후였다. 이 어린것이 뭔가를 먹으면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거기다 열도 났다. 39도 전후. 해열제라도 먹이려고 했으나, 아이는 약을 뭔가를 삼키면 죽는 것 마냥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아이의 손과 발에는 좁쌀보다 작은 붉은 점들이 나 있었고, 입 안에는 좁쌀만 한 하얀 염증들이 가득했다. 손과 발에 붉은 반점과 입에는 수많은 구내염. 손과 발, 입에 증상이 타나나는 '수족구' 병이었다.  

 수족구는 '콕사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만 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매우 흔한 질환이었으나, 특별한 치료는 없었다. 항바이러스제도 필요 없고, 기껏해야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는 게 전부였다.


치료제는 약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었다. 의사로서 수족구에 걸린 아이를 지겹도록 보았다. 설명은 앞에서 말한 것에 더해 "어른은 걸리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로 끝이 난다. 의사로서 비교적 간단한 질환이다. 하지만 수족구에 걸려 물조차 먹으려 하지 않는 딸을 보니 머리가 아팠다. 어른이라면, 아무리 목이 아파도 꾹 참고 먹지만 아이는 달랐다.

 아이는 오로지 현재, 그것도 지금 당장 안 아픈 게 전부였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오늘을 살았지만,
현실에서 우리 딸은 오늘이 아니라, 지금 당장만 살았다.

 밥은커녕, 물도, 해열제조차 먹지 않고 울기만 했다. 나는 딸 주희가 흘리는 눈물과 땀마저 아까웠다. 주희처럼 수족구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결국 탈수로 수액을 맞거나, 심한 경우 입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몇 시간만 지나면, 아이는 축 쳐질 것이었다. 의사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기력하기만 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려고 안고 있으니 내 몸도 마음도 더웠다. 아내와 함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바람이라도 쐴 겸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그때, 집 근처 빨간 왕관 무늬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카페는 커피보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더 유명했고, 우리 가족은 종종 그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바로 저거야.'

 나는 하얀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에게 내밀었다. 울다 지친 아이는 아이 스키림을 보더니, 뾰로통한 입을 새 입술처럼 조심스레 내밀었다. 울다 지친 아이는 목이 말랐을 것이다. 혀로 살짝 맛을 보더니, 수족구로 아픈 것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는지 계속 먹어댔다. 달기도 했지만, 아이스크림이 차가워서 일시적으로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까지 줄여주기에 아픔도 덜 했을 것이다.


밀크 아이스크림은 선녀의 옷처럼 부드럽고, 천사의 키스처럼 달콤했다.

 아이는 과자로 된 콘까지 다 먹었더니, 처음으로 웃었다. 확실히 아픈 것도, 목이 마른 것도 나아진 듯했다. 주희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아내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오늘의 약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은 때로 훌륭한 약이 된다. 그 후로 종종 아이들이 편도염이나 구내염으로 와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교과서에 없는 이 특별한 방법을 쓴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에 울고 있던 아이의 눈은 반짝이고, 반대로 엄마는 인상을 쓴다.

 "대신 딱 하나만 먹어."

 그제야 엄마가 마음을 놓는다. 아이도, 엄마도, 의사도 모두가 만족하며 미소를 띤다. 아이스크림이 약으로 쓰이는 경우는 구내염이나 편도염뿐만이 아니다. 가끔 삶이 힘들 때 나와 아내는 주희를 낫게 해줬던 바로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 때를 회상하며 웃음 짓는다. 아이스크림은 하얀 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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