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로 들어온, 짙게 화장한 20대 여자의 마스크 너머로 귀찮다는 표정이 전해졌다. 건강검진을 하다 보면, 종종 접하는 표정이다. 나는 15년 가까이 의사로 살면서, 영유아 검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검진에 이어 성인 검진까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신생아부터 백 살 할머니까지 건강검진을 했다.
초등학생은 겁을 내고,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30대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50대부터는 건강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가지지만,
10대와 20대는 얼굴 표정에 귀찮아하는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10대는 주로 단체로 오기 때문에 하하호호 자기들끼리 웃지만, 주로 혼자 오는 20대는 말은 안 해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난 아픈데도 없고, 건강한데 굳이 이런 걸 귀찮게 해야 하나.'
실제로 이 나이 때는 건강하고, 술을 아무리 먹고, 담배를 아무리 펴도, 간이 나빠지거나, 암에 걸리거나, 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니까 몸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없다. 실제로도 사망률 그래프를 보면, 이 나이는 큰 문제가 없다.
"혹시 평소에 어디 아프거나, 몸에 대해 궁금한 적 있어요?"
"네, 없어요."
눈썹을 검게 칠하고, 눈에는 색조 화장을 한 그녀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진료실에 있는 두 개의 모니터 가운데 하나를 김수정 씨에게 돌린다.
"이 나이 때는 몸도 건강하고 사망률이 매우 낮습니다. 우리나라 사망률 1위가 암이고, 2위가 심혈관질환이지만 사실 이 나이 때에 암이나 심혈관 질환이 있겠습니까? 몸도 건강하고, 아픈데도 없고, 걱정이 없죠. 건강검진? 그냥 회사에서 시키는니까 하는 거죠."
<출처: 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 통계>
그제야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마스크를 썼으니 표정을 알 수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20대 우리나라 사망률 1위가 뭘까요?"
"사고?"
"비슷합니다. 교통사고가 2위입니다. 1위는 자살이에요. 그리고 자살의 가장 흔한 원인은 우울증입니다."
<출처: 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 통계, 빨간색 표시는 내가 함>
"그런데 우울증이 의심이 됩니다.... "
만 20세에 첫 건강검진에 포함된 우울증 검사에서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이 평가 항목은 PHQ-9으로 질문도 9개이고, 점수도 9점을 넘어 10 점부터이면 우울증을 고려해야 한다. 그녀는 15점이 나왔다. 정신과 진료를 권할 수밖에 없다. 정신과 진료를 권해야 한다. 그런데 정신과 진료에는 무수히 많은 난관이 있다. '미친 사람만 가는 거 아니냐?'는 선입견부터 해서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된다.'는 일반인들의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까지.
나는 그녀 앞에서 심리학 책을 폈다.
"대학교에서 쓰는 심리학 책이에요. 사람들이 정신 치료하면, 기다란 소파에 누워서 막 상담하고 그럴 것 같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약물 치료입니다. 왜냐고요? 심리학 책을 보면 아시다시피, 이제는 심리학에서도 우울증 기전이 신경이나 호르몬 문제로 보거든요. 보시면 알다시피 이건 거의 의학 책이잖아요? 특정 물질이 부족해서 우울증이 생기니까, 특정 물질을 보충해주는 거죠. 혈압이 높으면, 약을 써서 낮추고, 낮으면 약을 써서 올리잖아요, 이제 기분도 너무 심하게 붕 뜨면 약을 써서 낮추고, 너무 가라앉으면, 약을 써서 올리는 거죠. 단순히 마음의 문제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는 크게 도움이 안 됩니다."
김수정 씨는 이제야 나를 제대로 쳐다본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말에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이라고 혼자 추측해 본다.
그러니, 꼭 정신과 치료 받으세요.
<굿 윌 헌팅>
정신과를 배우기 전에는 <굿 윌 헌팅>을 매우 좋아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와의 소통과 아름다운 모습. 5번, 10번은 넘게 봤다. 로빈 윌리엄스의 <닥터 아담스>를 몇 번이나 보았고, <쥬만지>도 좋아하여 이미 시리즈 전편을 다 보았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결국 환자인 '윌 헌팅'(맷 데이먼)은 정신과 교수인 '숀(로빈 윌리엄스)'의 말에 그동안 감추었던 자신의 벽을 무너뜨리며,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제 그건 일종의 '의학 판타지'라는 것을 안다. 사람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선문답 같은 말 한마디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노력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심리학 책을 편다. 해가 짧아지고,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심리학 책을 펴는 일이 많아진다. 의사란 즐거운 환상을 깨고 힘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슬픈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김수정 씨도 용기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