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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y 18. 2023

왜 다섯 살 아이가 응급실을 뺑뺑돌다 죽었을까?

의사와 병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입은 하나지만, 우리는 음식도 먹고, 숨도 쉬어야 한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식도를 통해 위로, 공기는 기도를 통해 폐로 간다. 이 두 개가 엇갈려 공기가 식도로 가서 위로 들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면 폐렴이 생기고 심하게는 죽을 수 있다. 이에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면, 몸은 반사적으로 심하게 기침을 해서 음식을 뱉어낸다. 사래가 걸린 것이다.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후두개(후두덮개)가 있고, 기도 입구가 좁다. 


     음식이 폐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몸은 기도 입구를 좁혀놓았는데, 좁아진 기도 입구에 염증이 심하게 생기면 기도가 막힐 위험이 생긴다. 급성 후두염, 일명 크룹이다. 이 크룹에 걸리면 사람은 특징적으로 개가 짖는 소리의 기침을 한다.  

 크룹은 시한폭탄이다. 중증 크룹의 1~5% 정도에서 기관삽관이나 심하면 기관절개가 필요하다. 그것도 기도가 완전히 폐쇄되기 전에 하면 모를까, 기도가 완전히 폐쇄되어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대학병원에서도 기도를 확보하여 살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크룹은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테로이드와 에피프린 네뷸라이저로 직접 후두로 약물을 투여하여 염증을 줄이면 기관삽관이나 기관절개 없이 며칠이면 호전된다.        

     

<출처: SBS>

     그런데 크룹에 걸린 5세 아이가 어린이날 연휴였던 5월 6일 토요일 밤 열이 오르고 호흡기 가빠져, 신고를 받은 119 대원들이 출동했다. 서울시 광진구였기에 근처 대학병원은 많았지만, 4곳 모두 병상이 없거나 진료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겨우 5번째 병원에서 ‘입원 없이 진료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내원하여,  ‘급성 폐쇄성 후두염’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뒤 다음 날인 7일 새벽 귀가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숨쉬기만 힘들어했고, 전날 진료를 받았던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지만, 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진료라도 받기 위해 응급실을 가려고 준비하던 아이는 화장실에서 “(아이가) ‘엄마, 쉬가 안 나와’ 하더니 갑자기 주저앉았다. ‘엄마, 나 목소리 왜 이래’ 그러더니 그냥 바로 1초도 안 돼서 (쓰러졌다)”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인한 기도 폐쇄로 결국 사망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서 계속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기도 폐쇄로 인한 심정지가  왔다면,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라도 100% 살릴 수 있었다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계속 호흡기 치료를 하고, 상태를 관찰하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면 기관 삽관을 했으면 살 가능성은 높았다. 하지만 아이는 입원하지 못했다. 왜 여러 개의 대학 병원이 ‘병상이 없다’, ‘진료할 수 없다’라고 했을까? 진짜 병상이 없었을까?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사는 

1. 외래 진료 (9시부터~5시까지) 

2. 중환자실 담당 24시간 

3 응급실 진료 24시간 

4. 입원 환자 담당 24시간 

     

에 추가로 시술을 하기도 한다. (수술하는 과나 내시경을 하는 소화기 내과 등이라면 정규 수술이나 시술(8시부터~6시까지), 및 응급 수술이나 시술 24시간이 더해진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 의사들은 두 번 놀란다. 의사들이 하루에 보는 환자 수에 놀라고(외국은 하루 15~20명, 한국은 최소 60에서 100명을 넘게 보기도 한다), 두 번째는 가격에 놀란다. (위 내시경: 한국 4만 원, 대만 6만원, 일본 13만 원, 이스라엘 35만 원, 미국 300만 원)    

<내시경 수가의 국제적 비교: 한국은 어디에 있나?, 정대영>

 이에 대학병원은 그동안 정당한 수가를 받기 위해,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정부와 투쟁? 하기보다는 더 많은 환자를 보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의 전공의를 착취? 하면서 병원을 운영했다. 전공의는 외래 진료에 참여하기보다는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응급실, 입원, 중환자실을 맡아서 했다. 의사들에게 이 레지던트 과정은 군대와 같은데, 3~4년만 고생하면 끝이기에 어떻게든 버텼다. 거기다 나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젊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힘들게 수련하고 배워서, 전문의를 딴 후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힘들게 수련을 받았다. 


 하지만 바이탈과는 1. 저수가 2. 각종 소송 및 과도한 배상 인한 위험 증가로 ‘하이 리스트 로우 리턴’(High Risk, Low Return)으로 모두가 기피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소아과는      

3. 더 낮은 매출(아이가 간단한 피검사조차 어려운데다 영양제 등의 비급여가 없음)

4. 진상 보호자(일명 맘충) 

5. 저출산으로 인한 소아 환자 감소


 라는 악조건이 더 해졌다. 기존에 소아과 전문의는 배운 게 소아 진료뿐이라 눈물을 머금고 진료를 계속하지만, 이제 아무도 소아과를 하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2021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 미달사태였다. 

<2021년 소아과 미달 사태>

 소아과 전공의를 갈아 넣어서 간신히 운영되던 대학병원은 어쩔 수 없이 교수가 보는 외래는 유지하되, 24시간 근무가 필요한 응급실과 입원 환자 및 중환자 병상을 줄이고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이번에 ‘서울 한복판 5살 아이,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17500059


 우리는 중요한 것에 관심과 시간, 그리고 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오랫동안 소중한 생명에 관심과 시간, 그리고 돈을 쏟아붓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5살 아이를 잃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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