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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Sep 02. 2023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꾀병 구별법

 어제는 9월의 첫날이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대신 병원으로 오는 중고등학생이 늘기 시작한다. 감기 등의 호흡기 질환은 별 차이가 없는데,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다고 하는 학생들이 는다.

 두통과 복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아니 한 달에 몇 번이라도 겪는 흔한 증상이다.  의사인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두통과 복통을 자주 경험한다. 두통과 복통의 원인은 각각만으로 책 한 권 정도로 많다. 진단명 또한 수백, 수천 가지이다.

 머리나 배가 아픈 환자가 오면, 의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진단이 아니라, 심각한 질환의 가능성 여부이다. 두통일 경우, 시야 이상, 구역질 동반, 밤에 깰 정도로 심한 통증, 말이 어눌해지거나 신경학적 이상 등의 경고 사인이 있으면, 즉시 뇌 CT 등을  정밀 검사를 권한다. 복통일 경우도 비슷하다. 특정 부위를 눌렀을 때 아프거나, 혈변, 체중 감소 등이 있으면 복부 CT나 초음파, 위대장 내시경 등을 권한다.  

 이어서 직접 진찰을 한다. 손으로 아픈 부위를 만져보고, 배의 경우 청진기로 장의 움직임을 듣는다. 그렇게 심각한 질환 가능성이 고, 정밀 검사가 필요 없을 때에야 비로소 의사는  증상을 호전시키는 약을 준다. 통증이 있으니 진통제를, 설사를 하면,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주면서 경과를 관찰한다. 그러면 대부분 약의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인지 대부분 호전된다. 진단명은 두통은 긴장형 두통이나 심인성 두통, 복통은 기타 급성 위염, 상세불명의 비감염성 위장염 및 결장염,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이 붙는다.  

 학생이 자주 머리나 배가 아파서 오면, 의사의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정밀 검사를 해야 하나?’ 다시 경고 사인에 해당하는 질문들(두통의 경우, 증상이 더 심해지는가? 구토를 동반하는가? 팔다리 한쪽에 힘이 빠지는가? 쓰러진 적이 있는가? 관자놀이에 혈관이 만져지는가?)을 한다. 같이 온 어머니는 근심반 짜증반이다. ‘또 저런다.’, ‘학교 가기 싫어서,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닌가?’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눈빛이 이미 말을 한다.

 의사로서는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그럴 때 나만의 질문을 던진다.

 “방학 때나, 주말에는 어때요?”

 학생은 곰곰이 생각을 한다.

 “방학 때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 대답이 나오면 나는 표정이 밝아진다.


그럼 괜찮아요. 스트레스성이에요.

"머리가 아프면, 긴장형 두통, 배가 아프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같은 원인인데, 증상은 다르죠. 시험 전날이나, 시험 당일날 화장실 가면 사람들이 붐비죠? 그런 거예요.”


 여기서 보호자를 한 번 보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꾀병은 아니에요. 진짜 아픈 거예요.
대신 몸이 아니라, 마음이.
어른들의 월요병 같은 것이죠.

 그제야 부모도 학생도 얼굴 표정이 조금 더 밝아진다.


 마음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몸이 아프다. 몸이 아프면 또 마음이 아프다. 같은 이치로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진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몸의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하고 신경을 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몸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글은 제가 연재하는 K-공감 720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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