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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씨 Nov 20. 2020

사용자(User)에서 거주자로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요즘 하는 생각이 있어요. 

과연 건축가의 손을 떠난 건축물을 건축가가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에요.
제가 주택을 지었는데, 건축주가 아이방의 벽을 모두 분홍색으로 만든다고 실망을 해야 할까요?

건축가의 손을 떠난 건축물은 이용자가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건축학개론에서 교수님이 이야기한 말이다. 그때는 당연하게 '건축가가 건물을 만들더라도 , 벽을 분홍색으로 칠하던 어떻게 사용하던 건축주 마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축학과를 다니다 보면 왜 교수님이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설계를 하면서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밤을 새우고 열심히 작업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더 좋은 평면을 짜기 위해서 계단 조금 옮기는 것 가지고도 몇 시간,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건축물이 내 '작품'처럼 느껴진다. 학생 설계에서는 실제로 설계가 '작품'에 그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결국 건축주의 돈으로 건축주의 건물을 짓는다. 건축가가 마감재의 재료, 벽의 색상, 조명, 가구 배치까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계획한다. 그러다 보면 내 '작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결국 사용하는 것은 건축주나 이용자들이다. 내가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로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어놔도 그들이 사용하면서 노란색과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면 건축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사용자(User)


학교에서 설계를 하다 보면 학기 초에 다양한 분석들을 한다. 법규, 지역, 역사, 인근 상권, 해의 방향 등등 수많은 것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사용자(User) 분석도 있다. 


흔히 건축에서 주택이든, 오피스든, 미술관이든 건물을 이용할 사람들을 모두 사용자(User)라고 부른다. 미술관이나 상업시설 같은 경우에는 이용자의 대부분은 그 공간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권한이 없다. 단순히 물건을 사거나 구경을 할 뿐이다. 이럴 경우는 사용자(User)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택과 오피스 그리고 학교 등과 같은 경우는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리고 내 '자리'가 존재한다. 나는 내 자리를 내 물건들로 채우고 꾸밀 수 있으며 내 공간에서 쉴 수 있다. 이 때도 사용자(User)라는 단어가 맞을까?


사용자: 사람을 부리거나 물건을 쓰는 사람 (네이버 사전)


사용자의 사전적 단어는 물건을 쓰는 사람이다. 이 단어로 풀어보면 사용자는 건축가가 만든 '물건'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거주자


하지만 실제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단순히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집의 주인으로서 공간을 바꾸고, 꾸미고,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사용자(User)'라고 불러야 할까?


아마도 사용자(User)를 대신할 말은 거주자가 아닐까 싶다. 헤르만 헤르츠 버거는 영어로 Dweller로 표현하던데 영어로서는 Dweller가 맞을지 Resident가 맞을지 모르겠다.


주거에 있어서 사용자(User)를 사용할 곳은 호텔이나 숙박시설이 아닐까? 물리적인 환경부터 가구, 심지어 샴푸, 린스, 칫솔 등까지 모두 준비되어있고 나는 그것을 '사용' 하기만 하니까.


단순히 말장난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설계를 하려면 내가 모든 것이 불변하는 '작품'을 만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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