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것과 가장 닮은 분야는 요리일 것이다. 건축에서 돌로 할까 나무로 할까 고민하는 것은, 요리로 말하면 고기로 할까 야채로 할까 식의 고민이다. 어쩌면 이 고민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그런데 오늘날 건설업계에서는 보통 '우선 견적과 도면부터 보자'라고 호령하고 '우선'이라는 말을 선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일이 진행되면 '어떤 고기로 할까? 어떤 야채로 할까?' 등의 세세한 사항을 도면으로 지정할 수 있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선 고기로 할까? 야채로 할까? 이 정도만 간단하게 도면에 써 두고 견적서를 만들고 나면, 현장은 시작되어 버리는 것이다.
- <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쿠마 켄고의 <자연스러운 건축>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그동안 고민해오던 것들과 겹치는 영역이 넓고, 다른 사람에게 말로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정리해서 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책을 읽다 보니 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요리와 건축을 비교하는 말이었다. 저 글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 헜던 현장과 설계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계를 하고, 시공이 되고,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항상 후회가 남았다. 어딘가 다들 부족해 보였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면 설계는 언제나 시간과 예산에 쫓겨서 일단 그려놓고 해결책을 완벽하게 풀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설계, 디테일들은 시공 직전에 되어서야 다시 논의가 되고 예산과 시간, 시공 편의성에 의해 급하게 미봉책으로 덮어졌다. 재료, 디테일, 설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던 일이었다. 쿠마 켄고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역시 건축판은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어이없는 안도감도 느껴졌다.
'물질'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도 그것이 돌로 되어 있는 것인가,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인가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상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쿠마 켄고는 3차원 투시도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모형은 더 좋으나 모형에도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했다. 모형으로는 건축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지만, 건축의 '물질'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목업에서는 가장 실제에 가까운 '물질'을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재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목업을 통해 실제 '물질'을 느끼는 설계를 하고 싶다. 쿠마 겐고에게 '예산은 전혀 없습니다만, 우리 가게의 석공에게 무엇이든지 시켜 주세요.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정성껏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찾아온 돌 미술관의 건축주를 만나면 얼마나 즐거울까. 장인들과 같이 일대일로 협업하며 진행하는 설계를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