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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한 미아 Sep 13. 2016

[끄적끄적] 무기력증이 나에게 남긴 것

대한민국에서 나이 서른에 백수로 살아간다는 비참함

요 몇 주간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4월 한국에 온 후로 백수여도, 무한정 놀아도 불안하지 않았던 나였으나 이번은 달랐다.


이력서를 내고, 전화를 받고 면접 약속을 잡고, 면접을 보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피로가 쌓였었다. 실제로 취업이 돼 일을 하기도 했고, 합격을 했음에도 가지 않은 곳이 꽤 많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것, 평가받는 자리에서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피곤한 일이었다. 구직활동이 오랜만인지라 이 감각을 잊고 있었나보다.


이번에 유독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허무해서였다. 허무함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을 나열해 보자면...

1.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2차까지 면접을 봤다.  과정에서 면접관들은 나를 다그치며 압박면접을 펼쳤고,  신상모조리 털렸다. 부모님의 탄생년도, 남자친구 직업과 나이, 결혼 예상 시기, 쉬는시기에  했는지 등등.  그대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면접. 면접관들이 못됐다거나 괴롭히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문화인  같았다. 몇십  전에 머문  변하지 않은 구식 면접. 실제로 대표 면접관은 60-70대로 보이는 아저씨 둘이었으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월급은 퇴직금을 포함해 13개월 나누기로 계산했으며, 야근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2. 이 회사 입사 날짜까지 정했으나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면서 일을 해야 했음이 너무나 분명했고, 나는 돈을 조금 벌어도 되니 너무 큰 부담감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 (부담감과 책임감은 다르다) 그러던 차에 내가 일하고 싶었던 다른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바로 합격했던 이 회사에 연락해서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3. 그리고 다른 두 곳 면접을 봤다.

4. 그 중 한 곳은 연락오지 않는 걸 보니 안 된 듯 하다. 대한민국에서 막내 직원이 되기에 나이 서른은 너무 많았나보다.

5. 다른 한 곳은 합격인 듯 아닌 듯...한 모호한 결과가 나왔다.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해달란다. 나쁘지 않았지만, 서울 생활을 이어가려면 나는 정식 직원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이 일도 안 하기로 했다. 이 회사가 하는 업무가 재밌어 보였고, 내 삶의 방향과 잘 맞아서 월급 150만원에도 만족하려 했으나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내용은 좋으나 그 일을 해나가는 방법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간 이렇게 면접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름의 노력을 했으나 결국은 무직 상태인 처음으로 돌아와버렸다. 게다가 나이 서른에 모아놓은 돈도 없고, 내가 경력이라 생각했던 건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한 워킹홀리데이가 구직 시장에서는 그냥 쉰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허탈감을 안겨줬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나는 완전히 쉬지도 못한 채 불안해하며 이도저도 아닌 시기를 보냈다.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결국 영국에서 조금 남겨온 파운드를 환전했다. 몇십 만 원을 손에 쥐는데 이젠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비참해졌다.


이런 상황에 다다르자 나는 내가 일하고 싶지 않았던 몇 군데의 회사를 찬 것이, 내게 갑작스레 아무런 합의도 없이 텔레마케팅을 시킨 회사를 그만둔 것이 내 실수인 건지 잘 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내 주제에(신입이라기엔 나이 많은, 경력 별로 없는, 일 오래 쉰 내가)' 회사를 고른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런 자괴감까지 왔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싶은 나는 그저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하는 이기적인 사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게으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낙오되는가 싶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도 가라앉아 있던 이 시간이 아주 의미가 없진 않았다. 이왕 쉬는 거 책이나 읽자 싶어서 밀린 책들을 기쁜 마음으로 읽고 있다.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충동적인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러고 나니 다시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나름의 방향과 시기도 정했다.


마음이 답답할 땐 하늘을 본다. 저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며. 내가 어떠하든 늘 내 머리 위에 있는 든든한 하늘.


브런치가 자극제가 되고 있다. 난 글을 쓸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멍석이 깔리고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글을 쓰게 된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내 마음과 감성을 쏟아버리는 그릇에 불과할지 모르겠으나.


결국 어떠한 행동은 자극이 되고 다른 행동으로 연결된다. 선순환. 이젠 몸을 좀 더 움직여서 삶에 활력을 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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