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터키에서 지내던 시간동안 느낀 것, 배운 것
1. 시간이 흘러흘러 흘러가길 기다리는 법.
2. 나쁜 것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3.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미워도 하는게 사랑이라는 것.
4. 사랑은 다 사랑일 뿐이고, 이별은 다 이별일 뿐이라는 것.
서울 도착까지 2시간 30분 남았다. 비행기에 떠있을 때는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이때도 저때도 아닌 것처럼 터키에서의 시간도 그렇게 붕 뜬 기분이다. 그 시간들은 마치 2009년의 어느날도 2010년의 어느날도 아닌 시간들. 22살도 23살도 아닌 시간들. 일상도 아니지만 여행도 아닌 시간. 사랑하진 않았지만 잊지도 못한 시간. 끝났지만 끝난 것도, 시작되었지만 시작이 아닌 시간. 붕 뜬 유예기간. 그래서 내게 터키는 단지 Ruya. 그리고 그대로 나였을 뿐.
터키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지만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눈물이 어떻게 말라왔는지. 이 가죽노트에 어떤 소리를 뱉어냈는지. 괴뢰메라는 이상한 마을에 떨어져서 현실에 붕 뜬 기분으로 내렸던 결론이 뭔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전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한국에 돌아가면 우주에 다녀온 사람처럼 갑작스런 지구의 중력이, 일상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 모든 것을 잊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곳은 우주라는 저곳이 아닌 단지 루야. 이곳이지만 이곳이 아니고, 저곳이지만 저곳도 아닌, 모든게 중폭되고 확대되어 느껴지던 루야를 떠나 일상에 돌아온 내 삶은 꿈과 달리 가볍고, 몸과 마음도 가뿐히 움직여지는 새로운 하루와 새로운 해. 새로운 시즌의 시작.
오랫만에 10년 전의 여행기록을 들춰보게 되었다. 소셜클럽 N년 여행결산의 미션을 하다가, 판도라의 상자같았던 가죽노트를 들춰보았다. 그저 버티며, 시간이 일분 일초 흐르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할일이었던 시절에 굽이굽이 접힌 특별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3박 4일의 카파도키아를 떠올렸다가 그 날들이 떠올라버렸다.
그때의 나는 고작 이별 같은 걸로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존재가 되었는데, 사실 그 이별이 나를 다음 스탭으로 당겨놓은 큰 방아쇠이긴 하다. 내가 다시 이별을 한다면, 그런 시간을 겪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마음 안을 부유하는 모든 단어들을 끄집어내고, 기록하고, 연결하고, 관찰하고, 의미를 찾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고, 다음 스텝을 계획하고. 인생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는데, 다시 한번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때가 23살이 되던 해라, 나는 터키에서의 여기도 저기도 아닌 시간을 2에서 3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었다. 그리고 11년마다 이런 시기를 갖겠다고 다짐도 했고. 그리고 내년이 벌써 그 시기다. 34살이 되는 해. 3에서 4로 넘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해.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