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호르무즈해협과 수에즈운하
1월말 나는 이집트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를 경유하여 카이로에 도착했다. 미국·이란 전쟁 소식이 들려오자 주위 지인들도 나한테 미리 잘 다녀왔다고 한마디씩 건넸다. 두바이공항이 일시 폐쇄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마터면'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집트가 전쟁지역 난민들의 피난처로 돼 버렸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가자지구 대박물관(GEM)이 완공돼 이제 관광수입의 호황을 기대하던 이집트가 경제폭격을 맞았다고 할까?
미국과 이란간 전쟁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해 결국 석유전쟁이 되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봉투 대란부터 시작해 라면봉투까지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제품부터, 자동차·비행기 운송비, 공장가동비 등 모든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 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다. 2월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공습을 했을 때만 해도 테헤란 주요 청사 공습과 알리 하메네이를 포함한 수뇌부의 사망으로 이란이 끝장난 줄 알았건만,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조선 통과에 비상이 걸리자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이전에는 유목을 하던 사막지역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서 전세계 에너지경제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 중동은 2억년 훨씬 이전에는 바다였다. 바다 밑에 어마어마하게 쌓인 플랭크톤은 케로겐으로 변해, 수천만년 동안 60~150도의 열을 받으면 케로겐은 1500m지하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 바뀐다. 물론 석유가 밖으로 스며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거대 암석 주머니(덮개암)에서만 석유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은 중동지역이다. 반면 이집트는 홍해의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석유가 열에서 빠져나와 천연가스가 많은 나라다.
요즘 언론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비교하여 이집트 수에즈운하가 종종 언급된다. 나는 이집트여행중 아스완댐을 가게 됐는데, 소련의 지원으로 댐이 건설됐다는 완공기념탑을 봤다. 당시 이집트는 나세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친소련으로 선회해 영국·프랑스 등이 댐건설 지원을 하지 않았다. 1956년 수에즈운하의 운영권을 영국이 쥐고 있었는데,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댐 건설의 자금부족을 이유로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해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스완댐 건설은 나일강 범람을 막고, 이집트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최대 프로젝트이다.
이란은 중동지역 국가들처럼 이슬람교를 믿어도,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하는 소련·중국도 친하다. 반미노선이며 핵으로 이웃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란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종교중심 국가이다.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국가, 그런 나라일수록 빈부격차는 심하고 국민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란에서 지금은 반체제 성향의 국민저항보다는 미국에 맞서 자기 바다를 지킨다는 애국주의가 결집되고 있다. 지구상 작은 물줄기인 호르무즈와 수에즈, 거대 서방과 싸우는 명분으로 자국의 애국심을 일깨운다는 점, 세계경제에 에너지대란의 먹구름을 드리운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이 있다.
21세기 전세계 패권을 쥐고 흔드는 석유가 뭔지... 지금 이글을 쓰기 위해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 형광등 에너지가 없으면 생산할 수도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수천키로 떨어져 10시간의 비행을 해야 하는 중동의 작은 해협을 둘러싼 분쟁이 아시아 동남끝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들 가계에 드리운 현실은 거의 공포에 가깝다. 빨리 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2026.04.15.류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