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sorim Feb 28. 2016

인연이란, 때론 우릴 놀라게 하지. #1

_멜버른, 그와 나의 첫 만남.


"Morning!"


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아침 인사였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향할 때에는 언제나 "Sweet Dreams!" 나 "Good Night!" 등의 말들을 우리는 서로에게 수도 없이 내뱉었다. 좋다는 뜻을 말할 때의 그는 '예스'라는 말 대신 늘 '판타스틱'이라는 그 판타스틱한 말을 전혀 판타스틱하지 않은, 영혼 없는 텅 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무언가 이상한 일이 있을 때에는 '기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기이한 단어인 'bizzare'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그의 입버릇이었다.


특이했지만, 우리에겐 흔했던 아침 식사.


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로 날아와 있었고 그는 나와 제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던 하우스 메이트였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심코 그의 모든 입버릇들을 그대로 가져와 나의 입버릇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그는 내게 새로운 호주를 선사했던 사람이다.


_

그를 처음 만난 곳은 멜버른의 시티에서 트램으로 이십 분쯤 떨어진 자그마한, 그러나 소위 '힙'한 예술가들의 지역에 자리한 유기농 음식들을 파는 카페 겸 마트에서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고 그는 주로 뒤편의 유기농 마트의 물품을 정리하거나 카페의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역할을 하는 직원이었다. 아니 처음에의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길게 자리한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와 덥수룩한 같은 색의 수염에 덮인 그는 카페 내부를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처음으로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나의 얼떨떨한 눈은 갈색의 무언가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없었다.


일을 하던 다른 수다스러운 동료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커피 머신 앞에 서서 분주하던 그의 어깨를 툭 쳤고 그제야 그는 한참이나 아래로 시선을 내려 깔고 난 뒤, 싱크대 앞에 선 검은 머리칼의 낯선 동양 여자애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깡 말라 키만 껑충 큰 그는 헐렁한 고동색 티셔츠를 입고 나를 내려다보았으며 의외로 아주 경쾌한 분위기를 풍기며 내게 첫인사를 건넸다. 나는 얼떨떨하게 '안녕'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그가 건넨 알아들을 수 없던, 아마도 싱거운 농담이었던 한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기타를 치는 음악가였다. 가게 문을 닫고 청소를 모두 마친 여섯 시쯤이 되자 동료들 모두는 끝나고 맥주를 마시러 가자며 한껏 들떠 있었고 낯을 가리던 나는 우물쭈물 서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어주었던 것이 바로 갈색 수염의 그였다. 그 갈색의 포근함에 완벽하지 못한 영어 실력 때문에 의사소통이 걱정이라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에 그는 고맙게도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술이 들어감에 따라 급격하게 빨라지던 다른 동료들의 영어의 파도 속에, 휩쓸리는 나의 검은 눈을 이따금 그의 갈색 눈동자로 바라봐주었고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 이제는 그게 그저 그의 버릇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따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끄덕.


기분이 묘했다. 그는 기타를 치는 뮤지션이었고 다른 수다스럽던 동료도 드럼을 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밴드에 소속된 음악가라고 말했다. 짧은 숏컷 머리에 입술에는 피어싱을 한 자그마한 체구의 케이티 역시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그날 밤 술집 벽에 걸렸던 그림들이 자기 친구의 작품이라는 말을 꺼냈다. 예술과 영어와 새로운 문화의 혼돈 속에서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하고 막 멜버른에 도착한지 오십일 정도가 되어가던 작은 동양인은 혼란스러웠다. 그랬다. 나는 그날 '그'가 알려주었던 '그의 음악'을 들으며 비로소,


바로 이 순간 내가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 속에서 '나의 무엇'을 찾아가기를 바랐다.


그 밤의 술집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후에 나는 거의 매주 카페의 동료들과 그곳을 찾았다. 마지막을 기념하려 찍어두었던 사진.


그날 밤 모두가 일찍 돌아가고 그와 나만이 남았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의 음악을 들려주었고 그는 제일 자신 있는 그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리곤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중엔 곧 집을 비워 자신의 집에 방이 하나 남으니 혹시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있다면 연락을 달란 이야기 또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날은 어둑어둑 해졌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작게 선 나와 멀어졌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나름의 '서양식 인사'인 애매한 포옹을 건넸다. 나는 이게 뭔가 하는 얼떨떨함으로 어색하게 그의 어깨를 두 번쯤 툭툭 쳤고 자전거를 탄 커다랗던 그는 멀어졌다.


그 밤 나는 그가 일러준 그의 음악을 들으며 트램을 타고 집에 돌아왔고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저 그의 음악만이 남아 있었다.

_



그런 그와 내가 결국에는 한 집에 사는 사이가 될 줄은, 그 날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영국과 강한 뉴질랜드 식이 섞인 호주 억양의 영어에 이리도 익숙해질 줄은, 그날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하우스 파티에서의 두번째 뮤지션이던 그의 뒷모습.


...


(다음 편에 계속.)


덧,

그 얼떨떨한 '서양식 인사'의 나의 첫 반응에 대해 후에 우린 농담을 했었다. 아니 그가 짓궂게 문화 차이 때문에 그때 그렇게 '얜 뭐야, 왜 가까이 다가오는 거야'하는 떨떠름한 반응으로 움츠렸던 거냐며 웃음기 어린 농담을 했었다. 그랬다. 호주를 떠나던 날에도 어색했던 그 '서양식 인사'는 격한 반가움과 애틋한 헤어짐을 말하기에 너무도 적절한 것으로 때때로 내가 아주 그리워하지만. 약간의 지금에도 그리고 대부분의 그 첫 경험에서도 나는 무심코 움츠릴 만큼 어색해했었다. 그렇게 나는 낯선 곳에 놓여있었다. 홀로. 그렇지만 씩씩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미드나잇 인 베를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