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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Mar 02. 2016

인연이란, 때론 우릴 놀라게 하지. #2

_멜버른, 흐르는 강물처럼.



오늘과 같은 저녁이면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끝마치고 각자의 주린 배를 부여잡고 부엌으로 어슬렁거리는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부엌에 켜켜이 쌓인 갈색 봉투에 담긴 하얗고 빨갛고 주홍빛이고 갈색빛을 띤 야채들을 하나 두개 꺼내어 하나뿐이던 도마에 올려 썰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으레 그러하듯이 무엇을 만드느냐는 한마디를 던지곤 찬장 안의 커다란 냄비를 꺼내 커다란 자신의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부엌 한켠 나의 자리와 나의 야채들. 그 알록달록함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를 잘 아는 친구는 그의 음식들은 늘 '노란색'이어서 그의 얼굴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는 어이없는 농담을 던졌었고 그와 나는 그 어이없음에도 몇 번이고 커다랗게 웃었다. 그의 음식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튜머릭이라고 부르던, 강황 가루를 담고 있었고 덕분에 그의 음식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노란빛이었다. 그에 반해 나의 음식은 언제나 노랗고 빨갛고 푸른빛이었다. 때때로 그는 하이에나처럼 나의 냄비를 들여다본 뒤, 갈색의 동그란 눈을 하고 필요 없는 질문을 해댔고 언제나 1.5인분을 만들곤 했던 나의 남은 음식들을 때때로 덜어갔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하는 일인 가구 생활이 아닌 '쉐어 하우스'라는 것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 덜어 나누곤 하던 그 따뜻하던 그와 나의 음식들과 같이 조금은 더 포근한 것이었다. 외로움을 덜어 나누곤 하는 것이었다.


_

처음에는 우리가 같은 집에 사는 '하우스 메이트'가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나는 그를 단 하루만 함께 했던 '자원봉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헤어질 때 우리가 나눈 것은 그저 하나의 SNS 아이디뿐이었다. 나는 먼저 살던 시내 한복판의 3인실의 삐그덕거리는 이층 침대에 크게 불만이 없었고 따라서 당장 이사를 생각해보진 않고 있었다.


그가 페이스북에 두 달 동안의 여행 때문에 집을 비워  그동안 그의 방에 지낼 사람을 구한다는 공지를 올렸을 때에만 해도, 나는 그저 나와는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나는 매주 꾸준히 우리가 만났던 카페로  '자원봉사'를 나갔지만, 그는 다른 직원들의 일명 '대타'로, 정해진 스케줄 없이 누군가 사정이 생겨 일을 나오지 못하는 날에만 근무했다. 그래서 앞으로 그를 다시 마주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우연히도 그날따라 발걸음이 향하던 '스미스'라는 이름의 거리를 거닐었고 때마침 그 거리는 내가 자원봉사를 하던 카페가 있는 바로 '그 거리'였다. 그날따라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마음이 화창했던 나는 차나 한잔 할까 하는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섰을 것이다. 얼핏 들여다본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에는, 역시나 그가 없었다.


늦은 오후의 스미스 스트리트.


내가  자원봉사를 하던 카페의 뒤쪽 한 켠에는 향신료나 곡물 등의 물건을 판매하는 작은 유기농 마트가 붙어있다. 나는 렌틸 콩이라는 것을 한번 사보려 그 마트 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Hi!"

저 높은 곳의 갈색 머리의 어떤 남자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영혼 없는 안녕을 말했다. 나는 이미 놀란 눈을 하고 그 갈색 머리에 갈색 수염을 한 남자가 한 달 전에 함께 일을 한 뒤 맥주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그 안녕이 너무도 영혼 없었기에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 안녕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짤막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분명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곤 또다시 그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개 쉐어 하우스의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를 받을 때에는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라는 간단한 만남을 가지는데, 오늘 밤이 그 인터뷰의 마지막 날이라며 나에게 저녁 일곱 시 즈음 자신의 집에 들르라는 말을 그는 건넸다. 방을 계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저 지난번 술자리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그와 다른 모든 동료들이 사는 '그 동네'가 어떤 곳인지, '자신의 집'이 어떠한지 그저 구경만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그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적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인터뷰에서 '그의 집'이 가진 완벽하게 온 멜버른을 안은 백만 불 짜리 전망에 완전하게 반해버렸다. 가자마자 그와 그의 파트너는 나를 가장 포근한, 일명 '껴안는 소파'에 앉게 했고 어느새 내 앞에는 자그마한 유리잔이 놓였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사람이던 그의 파트너가 나의 잔에 '페일 에일'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서였을 수도 있다.  그다음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 내가, 완전하게 그의 집의 전망에 반하게 된 것은.


추운 날의 창틀. 부엌은 작은 정원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달 동안 그의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뉴욕으로 떠났고 나는 멜버른을 지켰다. 결국에 그는 뉴욕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네 달 남짓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동안 내내 그의 방을 지켰다. 그리곤 때마침 비게 된 그의 옆 방에 또다시 두 달쯤을 머물렀고 그러다 떠나기 직전에는 그 집의 빈 방인 다용도실에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삼일을 지냈다. 그렇게 나는 우연히 만난 '그의 집'에서 9개월을 지냈다. 여전히 아리도록 그리운 그의 집은, 아- 나의 멜버른, 영원히 애틋할 나의 멜버른을 가득 담고 있다.

_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는 연습 겸 집에서 커피를 내려주곤 했다. 우린 홈카페 놀이를 했다.
마지막 밤의 야경.



실은 내가 그의 모든 제안들에, 내게 주어졌던 모든 제안들에 '예스'를 말했기 때문에 그 가득 넘치는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던 매 순간 내게 주어졌던 그 하나의 선택, 그 선택들이 나의 멜버른과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랬다.


그렇게 그는 나와 서로의 '노란' 음식들에 대한 '노란' 농담들을 가득히 던지며, 그 '껴안는 소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을 나란히 보았으며, 나의 멜버른의 절반에 그 갈색의 짙은 그림자를 가득히 남겼다.



여전히 나는 그의 음악을 듣는다. 어쩌면 나의 멜버른의 '처음'과 '끝'을 지켜본 사람. 그런 그의 음악.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그가 내게 들려주었던 그의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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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ifier Machine - Her Mouth is an Outlaw

몽환적인 음악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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