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멜버른, 두근거림에 대한.
오래된 글, 호주 멜버른에서의 어느날.
두근거림에 대한, 오래된 글을 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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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났다. 어젯밤 다녀온 누군가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서 노래 도입부의 가사부터 나를 사로잡은 노래가 있었다. '네가 내 옆에 서 있을 때면, 나는 발 아래의 땅을 느낄 수 없어.'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다의 또 다른 표현일까. 공연장의 좁아서 옆 사람과 어깨가 닿는 조금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와 나란히 같은 눈높이로 서 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와 마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마른 몸에 키가 껑충 큰 그는 나에 비해 항상 지나치게 높은 곳에 있었다, 서로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몇 번씩 되물어가며 대화를 해야 할 만큼. 그를 만난 것은 호주의 멜버른이었고, 그는 호주인이었다. 특히나 낯선 서로의 억양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대화하기가 힘이 드는, 한마디라도 건넬라 치면 다시 한번 말해야 하는 그런 사이였지만,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 약간의 불편함이 나를 그에게 더욱 끌리게 만들었는지도.
우리의 마지막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찾아올 터이니 마지막이 아니라며 웃어 보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카페에서 함께 일을 하는 사이였고, 나는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그는 그곳에서 사회봉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할당된 시간은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고 그날의 시간들이 그 마지막을 채우게 될 거라는 것을 그의 이른 공지에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이라 조급하고 불안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마지막을 물어도 다시 만날 테니 괜찮다는 말뿐.
그의 마지막 이어서일까, 가게는 한산했고 다른 동료들은 날씨도 좋은데 함께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 일찍 빠지던 그도 오늘은 잠깐 머물겠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은 술집에 가기보다는 맥주를 사와 한 병씩 나누어 들고 뒷문 밖에 모였다. 한참을 앞서 나갔지만, 늑장을 부리던 내가 뒤늦게 나갈 때까지 여전히 뒷문을 잡아 지탱하고 있는 그의 손이 보였다. 그저 몸에 벤 매너인지 나를 위한 매너인지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다. 나는 뒷문 문턱에 걸터앉았고,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알록달록 무늬가 있는 내 치마가 그에 일렁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동료 하나가 함께 봐야 할 동영상이 있다며 아이패드를 들고 나왔다. 작은 화면을 여섯 명이 함께 보려니 옹기종기 모여야 했다. 그는 사이의 스테파니를 지나쳐 내 옆으로 다가왔다. 뒷문은 약간 높아 세 칸 정도의 층계가 있었는데, 그는 내가 있는 칸 바로 아래칸에 올라섰다. 내가 다리를 약간 구부리고 서니 언제나 멀찍하기만 했던 그의 눈높이와 나의 눈높이가 계단 한 칸을두고 나란해졌다. 가까이 붙어 서서 스치듯 닿는 어깨에 모든 신경이 쏠렸다.
돌아보고 싶지만 꼼짝할 수 없었고, 스치는 어깨에 신경이 쓰였고,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의 옆얼굴이 얼핏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우리는 나란했다. 그날의 바람, 그날의 음악, 그날의 두근거림.
우리 집 근처 공연장의 낡은 의자에 앉아 나는 그날로 돌아갔다. 그날의 바람처럼 내 마음도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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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음악,
- 네가 나의 옆에 있을 때면, 나는 발 아래 땅을 느낄 수가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