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덩케르크>(2017)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 29

by 송석주 영화평론가


오늘 소개할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덩케르크>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덩케르크는 지명인데요.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의 접경지대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독일군의 공격으로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을 덩케르크에서 영국 본토로 안전하게 철수시켰던 작전을 말합니다. 당시에 영국 시민들까지 나서서 개인들의 요트와 어선을 동원해서 병사들을 구출했는데요. 이게 바로 영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되새기고 있는 ‘덩케르크 정신’입니다. 이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33만명이 넘는 병사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흔히 놀란 감독을 ‘플롯의 마술사’라고 부르는데요. 그 이유는 놀란 감독이 스토리, 그러니까 이야기를 배치하는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덩케르크>의 경우에는 해변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하늘에서 한 시간이라는 상이한 시공간의 흐름을 한 호흡으로 밀고 가는데요. 이는 결국 플롯의 힘으로 영화의 재미를 배가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놀란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이런 방식이 굉장히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감독이지만 그만큼 호불호가 강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이 영화가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공식과 관습을 비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관객이 ‘전쟁영화’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바로 ‘피 튀기는 전쟁 장면’인데,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전쟁 상황이 주는 스펙터클에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독일군의 공격에 쓰러지는 연합군 병사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마저도 아주 잠깐 스치듯이 보여주고 있죠.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전쟁’이 아닌 ‘전쟁으로부터의 탈주’, 그러니까 ‘생존’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는데요. 보통의 영화에는 명확한 주인공이 등장하잖아요? 가령 전쟁영화로 예를 들면, 주인공이 과거에는 어떤 일을 했고, 왜 이런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뒷배경을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또 구체적인 이미지로 말씀드리면, 전쟁 중에 한 군인이 군복 안주머니에 있는 어머니나 아내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뭐 이런 클리셰같은 건데요.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영화를 다 보고나오면 주인공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실제로 감독은 주인공의 존재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연출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선 논의와 연결해서 말씀드리면, 전쟁영화에서 선악의 구도를 선명하게 정해버리면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쉬워요. 왜냐하면 감정이입이 쉬우니까요. 무슨 말이냐면 탈출하려는 연합군은 착하고 불쌍한 사람이고, 탈출을 막으려는 독일군은 나쁜 사람. 뭐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놀란 감독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전쟁에서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연합군 병사들이 덩케르크로부터 구출됐을 때 오는 생의 행복, 생존, 살아있다는 것 등의 가치를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정리하면, <덩케르트>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전쟁이라는 상황이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한지 아주 영리하게 말하고 있는 거죠.


영화 <덩케르크>에 관한 제 해설이 조금 더 궁금하시면,


11월 29일(일) 오후 6시 18분, TBN(강원) <달리는 라디오> -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FM105.9)를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황동혁 감독, 영화 <도가니>(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