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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 영화 <천문>(2019)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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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영화는

허진호 감독 <천문 : 하늘에 묻는다>입니다.


이 영화는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과 당시 그의 신하였던 장영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종은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 초기에 국가의 기틀을 정비한 왕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농사에 도움이 되는 각종 기구를 개발해서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한 왕인데요. 세종의 여러 업적 중에 가장 손에 꼽히는 게 바로 ‘과학기술’을 크게 발달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이행한 신하가 바로 장영실이었죠. 말하자면 <천문>이라는 영화는 세종과 장영실이 합심해서 당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또 신분 차이를 뛰어 넘어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실제 역사적 인물이었던 세종과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영화이고요. 또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기영화’의 특징을 보입니다. ‘전기’라는 말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적은 기록”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기영화에는 역사의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요. 감독은 그 인물이 겪은 남다른 경험이나 업적을 묘사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러니까 감독은 역사적 인물을 바탕에 두고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더하는데, 결국 전기영화에는 필연적으로 사실과 허구가 뒤엉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드렸던 사실인 팩트와 허구인 픽션이 결합된 팩션영화의 특징을 전기영화 역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영화에는 역사적 위인뿐만 아니라 정치가와 예술가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이준익 감독의 <동주> 역시 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전기영화로 볼 수 있고요. 또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보컬이죠.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을 조명한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 역시 전기영화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전기영화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면서 거기에 감독의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주인공의 개성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장르입니다.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실존 인물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이나 모습 같은 게 분명히 있을 텐데, 영화가 그것을 직접적인 이미지로 재현해주는 거니까,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이 나온다면 다른 어떤 장르보다 흥미롭게 바라보는 경우가 있죠.


허진호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역사적 사실에 영감을 받았다”라는 문장을 스크린에 새겨 넣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영감’에 방점이 찍힌 채 전개되는데요. 특히 영화는 세종과 장영실이 발명한 눈부신 과학 기기보다는, 오히려 두 인물의 애틋한 관계맺음을 그리는 데 집중합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두 인물의 관계가 우정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영웅들의 놀랄 만한 업적이 아닌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닌 인간들의 ‘그저 그런 사랑’을 영화가 그려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천문>과 비교할 수 있는 영화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에 둔, 장엄한 스케일의 역사영화나 전기영화가 아니라 허진호 감독의 눈물겨웠던 멜로드라마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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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좋은 사랑에는 좋은 우정이 있고, 또 좋은 우정에는 좋은 사랑이 있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영화에는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장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가령 세종과 장영실이 나란히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는 모습을 카메라가 높은 곳에서 내려찍은 장면이 대표적이고요. 장영실이 먹물과 창호지 그리고 호롱불만으로 세종에게 아름다운 우주를 선물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 역시 사랑의 감정이 아주 충만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장영실이 세종의 침전으로 들어가서 ‘간이 혼천의’의 조작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그 흔한 연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묘한 성적 긴장감마저 감도는데요. 우정보다는 사랑에 가까운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이 영화가 미학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에 비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앞서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영화의 묘미는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사랑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만드는 여지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도발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섹슈얼리티의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런 식의 도발적인 비평과 접근이 오히려 영화를 더 풍부하게 사유하게 하는 토양을 마련해주거든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천문>에 관한 제 해설이 조금 더 궁금하시면,


12월 6일(일) 오후 6시 18분, TBN(강원) <달리는 라디오> -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FM105.9)를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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