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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Dec 06.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마지막 한 씬’

영화기호학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기호’(記號)란 어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부호, 문자, 표지 등을 이르는 말입니다. 기호의 유의어로는 ‘상징’(象徵)이 있는데요. 특히 문학에서 상징은 추상적인 사물이나 관념 또는 사상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백합은 순결을,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서 백합과 비둘기는 그것의 본연적 의미가 아닌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 예입니다.


영화에서도 기호는 참 중요한데요. 영화를 하나의 언어 체계로서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영화기호학’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영화가 과연 언어일까?’ 영화기호학의 창시자인 크리스티앙 메츠는 영화를 언어로 간주했습니다. 책 『영화 이론 입문』의 저자 정영권은 “메츠가 영화를 언어로 본 것은 음성언어와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언어처럼 의미를 발생시키는 작용, 즉 의미작용을 해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의미작용’이란 기호를 만들기 위해 ‘기표’(記標,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é)를 결합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기표가 의미를 전달하는 외적 형식을 뜻한다면, 기의는 그러한 외적 형식의 의미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言)이 ‘소리’와 그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로 성립된다고 할 때, 소리가 기표, 의미가 기의입니다. 나아가 메츠는 영화가 음성언어와 달리 특정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약호’(略號, code)의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메츠가 말하는 약호란 영화의 편집과 조명, 프레이밍과 미장센 등을 말합니다. 정영권은 “영화는 많은 약호들을 사용한다. 공포 영화에서 명암 대비가 뚜렷한 어두운 조명이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 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 누군가가 주인공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점 숏(point of view shot : 등장인물의 시점을 보여주는 장면) 등은 이 장르의 전형적인 약호들”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메츠가 영화기호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 『영화이지미학』의 저자 김호영은 “메츠는 (영화기호학을 통해) 이전의 주제 중심적인 영화분석이나 주관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영화비평에서 벗어나 영화 연구에 과학적인 엄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며 “메츠의 논의는 영화의 의미생성 과정에서 이미지의 역동적 창조성과 관객의 수용성까지 아우르려는 의도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메츠는 영화기호학을 통해 영화를 하나의 언어 체계로 보고, 과학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탐구하자고 했습니다. 영화학자 장 미트리 역시 “영화이미지는 의미작용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점에서 영화이미지는 명백하게 하나의 ‘언어기호’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생성중인 사유’를 표현하는 데 있어, 영화는 일반 언어보다 훨씬 더 뛰어난 언어가 될 수 있다”(김호영, 『영화이지미학』)고 설명합니다.


‘생성중인 사유’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이 말은 영화가 이미지들의 연쇄와 조합을 통해 현실의 운동성을 그대로 기록하고 재현하는 특성을 뜻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감독은 여러 영화적 약호들을 동원해 현실의 운동성을 스크린으로 옮깁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크린 속 세상에 내재한 여러 영화적 약호를 나름대로 분석합니다. 영화의 약호 중 하나인 ‘의상’과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장천 감독, 영화 <마지막 한 씬> 스틸컷

여장천 감독의 <마지막 한 씬>(2020)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 촬영 현장을 한편의 촌극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 격리 중인 감독(남준근)이 원격으로 촬영 현장을 지휘하는데, 이때 조감독(정민영)은 태블릿 PC 속에 있는 감독의 손과 발이 돼 현장을 동분서주합니다. 근데 조감독의 셔츠 색깔이 노란색입니다. 노란색이 상징하는 여러 가지 의미 중 하나는 바로 ‘의존’과 ‘미숙’입니다. 군대에서 신병이나 관심병사에게 ‘노란 견장’과 ‘노란 배지’를 달아주는 것 역시 이와 맥이 닿아있습니다.


감독이 없는 촬영 현장에서 조감독은 감독의 대행자로서의 권위를 누리지만, 경험이나 연륜의 측면에서는 아직 미숙한 존재입니다. 영화는 감독의 대행자라는 조감독의 권위와 위엄을 ‘검은 베레모’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조감독의 미숙하고 의존적인 행동을 ‘노란 셔츠’로 형상화합니다. 서로 상충하는 이미지(색깔 및 의상)를 통해 조감독이라는 캐릭터를 간단명료하게 표상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장천 감독, 영화 <마지막 한 씬> 스틸컷

다음은 프레이밍에 관한 부분입니다. 프레이밍이란 화면 내부의 구도와 구성을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인물과 사물을 화면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위 장면은 조감독이 촬영 중간에 잠깐 나와 허름한 골목에서 감독과 통화하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에서 조감독은 감독에게 촬영을 연기하자고 건의합니다. 혼자서는 현장 관리가 너무 벅차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때 카메라는 조감독을 롱 쇼트(long shot : 길게 찍기)로 포착하며 인물과 주위 공간을 한 화면에 프레이밍합니다.


조감독의 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의 지친 얼굴을 클로즈업(close up : 가까이 찍기)할 수도 있는데, 감독은 왜 롱 쇼트를 통해 인물과 거리감을 두는 걸까요? 결국 이러한 프레이밍은 허름한 골목이 주는 특유의 공간감과 조감독의 어려움을 동시에, 그것도 멀리서 포착함으로써 인물의 존재론적 상태를 전방위적으로 드러내는 약호로 기능합니다. 조감독보다 전경에 배치된 오토바이와 의자 역시 마찬가지죠. 그는 화면의 ‘중심’에 있지만 거기서 제일 ‘작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조감독의 지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의 상황을 관객들에게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처럼 영화기호학은 영화를 추상적이고 감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미작용을 하는 언어 체계로 간주하고, 객관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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