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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Nov 29.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페미니즘 영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페미니즘 영화’(feminism film)란 주로 여성주의적인 관점이 반영된 영화를 말합니다. 페미니즘 영화를 말하기 전에 우선 영화에서 여성이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책 『영화의 이해』의 저자 루이스 자네티는 “영화 안에서 여성들은 보통 남성지배적인 세계에서 사회적으로 ‘타자’ 혹은 ‘아웃사이더’였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남성에 의해 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네티의 말처럼 여성은 오랫동안 영화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 남성의 성적 대상이자 도구, 흥미 본위의 볼거리로 활용돼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된 계기는 1960~70년대에 촉발한 페미니즘 영화이론의 영향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는 1975년 영화잡지 <스크린>에 발표한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Visual Pleasures and Narrative Cinema」라는 기념비적인 글을 통해 영화가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다는 ‘은밀한 사실’을 폭로합니다. 멀비는 ‘남성의 시선’이 영화 내부(카메라의 시선 및 프레이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헤치며 페미니즘 영화 논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책 『페미니즘 영화이론』의 저자 쇼히니 초두리는 멀비의 글을 논거 삼아 “서사 영화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노출증의 역할’을 맡는다. 여성의 육체는 남성 관객들의 응시를 받아 에로틱하며 수동적인 대상이 되며, 그럼으로써 남성 관객들은 그들의 판타지를 스크린 속 여성에게 투사하게 된다. 그녀는 ‘응시됨’을 의미한다”며 “이와 반대로 스크린 속 남성은 바라봄의 대리인으로서, 스크린 속 여성에 대한 소유와 통제를 간접적으로 즐기는 과정에서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는 인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영화 <이창> 스틸컷

멀비는 이를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1954)과 ‘관음증’이라는 화두를 통해 풀어냅니다. 멀비는 히치콕의 영화가 “남성을 법이라는 정당한 측면에 그리고 여성을 잘못된 측면에 놓으면서 관음증을 전경화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영화의 주인공인 제프리는 사진기자입니다. 그는 일하던 중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무료한 그는 쌍안경과 카메라 렌즈를 이용해 창문 너머로 이웃들의 사생활을 훔쳐봅니다. 여기서 제프리의 시선은 곧 관객의 시선으로 전유되는데, 히치콕은 제프리의 관음증적 시선을 통해 관객의 억압된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끌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바라봄의 대상’ 혹은 ‘노출증적인 여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결국 페미니즘 영화란 ‘남성의 시선에 도전’하는 영화일 것입니다. 남성의 시선에 도전하는 영화,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 영화는 단순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초두리는 영화이론가 테레사 드 로레티스의 「여성영화 재고Rethinking Women’s Cinema」라는 글을 소개하며 “여성영화는 동일시의 모든 지점(인물, 이미지, 카메라)이 여성의 것, 여성적인 것 혹은 페미니스트적인 영화”라며 “여성영화는 실재 존재로서의 여성을 사회적 존재로서 보여준다. 그것은 여성들 사이의 차이, 즉 인종과 계급, 나이와 섹슈얼리티의 다양한 국면들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프로이트는 “도대체 여성들은 무엇을 원하는가?”하고 격한 어조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영화비평가 몰리 하스켈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영화에서든 영화 밖에서든 우리 여성들은 남성이 지닌 그 광범위하면서도 눈부시게 다채로운 선택권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 『영화의 이해』 中


위 의견을 종합하면 페미니즘 영화란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국면을 남성의 쾌락적인 시선이 아닌 시선으로 펼쳐 보이는 영화일 것입니다. 동시에 계급과 인종, 성적 지향에 편견을 두지 않고 남성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균열을 가하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은 영화 밖(영화의 기획, 제작, 촬영, 홍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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