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영화 <왕의 남자>(2005)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 36

by 송석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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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입니다.


<왕의 남자>는 ‘이(爾)’라는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조선의 제10대 임금인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가장 고귀한 신분인 왕과 가장 미천한 신분인 광대가 한바탕 어우러지는 거대한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연산군 역할을 정진영씨가 그리고 광대 장생과 공길 역을 각각 감우성씨와 이준기씨가 맡았습니다. 그러니까 <왕의 남자>는 왕과 광대의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에게는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 시대의 조선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생과 공길은 우연히 연산군 앞에서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때 광대들은 연산군과 그의 애첩인 장녹수(강성연)의 관계를 풍자하게 되는데요. 장녹수는 알려진 것처럼 연산군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사익을 채운 인물이었어요. 이 여인 때문에 연산군의 폭정이 더 심해졌는데, 이 지점을 광대들이 풍자한 거죠. 또 그들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풍자하는데요.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 중 하나였던 선왕의 후궁들을 칼로 베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밀쳐서 죽음에 이르게 해합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광대들의 놀이를 통해서 연산군의 광기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거죠.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다가 (…)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는데(君君, 臣臣)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君不君, 臣不臣)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고 말했다.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 보냈다. -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中

근데 위 이야기가 전부 사실은 아닙니다. 우선 이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의 한 문장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길이라는 광대가 연산군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다”는 취지의 풍자 놀이를 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이에 격노한 연산군이 공길을 유배 보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이준기씨가 연기한 공길은 실존 인물이고, 감우성씨가 연기한 장생은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왕이 광대들의 놀이를 보고 선왕의 후궁을 죽였다거나 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 거죠. 그러니까 <왕의 남자>는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감독의 상상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왕의 남자>는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요소를 갖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크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한 2005년만 해도 사극은 비주류 장르였습니다. 그러니까 티켓 구매력(극장 주 소비층)을 가진 20~30대 여성 관객들이 사극을 즐기지 않기 때문인데요. 또 이 영화에는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은 많이 등장하지만, 강동원씨나 손예진씨처럼 소위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 배우의 캐스팅도 없거든요. 여기에 심지어 ‘동성애 코드’를 삽입해서 비주류의 정점을 찍게 되는데, 이준익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과 또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죠. 이준기라는 배우가 소위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흥행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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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연산군 역할을 맡은 정진영씨의 연기가 굉장히 훌륭합니다. 왕의 위엄뿐만 아니라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함께 삐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광인의 모습까지, 정말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정진영씨가 <왕의 남자> 말고도 굉장히 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치셨는데, 아마 이 영화가 연기력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 관한 제 해설이 조금 더 궁금하시면,


1월 17일(일) 오후 6시 18분, TBN(강원) <달리는 라디오> -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FM105.9)를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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