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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Dec 07. 2022

관조와 절제의 미학을 가진 영화

영화 <창밖은 겨울>(2022)


영화 관련 일을 했던 '석우'는 고향 진해로 내려가 버스 기사가 됩니다. 석우는 정류소에서 우연히 고장 난 MP3를 줍습니다. 석우는 그 MP3가 누군가 내다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라 믿고 싶어 해요. 유실물 보관소를 담당하는 '영애'는 그런 석우를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이내 호기심을 느끼게 됩니다. <창밖은 겨울>은 석우와 영애가 누군가 버린(혹은 잃어버린) MP3를 통해서 서로의 과거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영화입니다.


‘잃어버리다’와 ‘내다 버리다’ 사이에서 뭔가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영화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뭔가를 획득하고, 성취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에 못지않게 욕심스럽게 갖고 있었던 것들을 덜어내고, 놓아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바로 무엇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불필요하게 쌓여있던 마음이나 아쉬워서 손안에 꼭 잡고 있었던 것들을 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창밖은 겨울>은 담담한 멜로드라마입니다. 흔히 멜로드라마라를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멜로드라마는 모든 장르의 기반이 되는 양식입니다. 멜로드라마는 음악을 뜻하는 그리스어 멜로스(melos)와 움직임을 뜻하는 드라마(drama)의 합성어인데요. 멜로드라마를 직역하면 '음악의 움직임'입니다. 음악을 시각화한 장르가 바로 멜로드라마인 거예요. 근데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요동치게 하는 경향이 많아서 '사랑 이야기=멜로드라마'라는 도식이 생긴 거죠.


일부 한국 멜로드라마가 감정적 과잉을 기반에 둔 신파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석우는 영화 일을 하다가 버스 기사가 됐고, 영애는 어렸을 때 탁구를 쳤는데 정류소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두 사람 모두 자기가 간절히 원했거나 혹은 원래 하던 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두 남녀의 성적인 긴장감에 집중하는 영화라기보다는 두 인간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데 천착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인물과 거리를 두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인물이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가까이서 찍어내야 관객을 감동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창밖은 겨울>도 그런 영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나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 같은 영화도 그런 감정적 과잉을 허용하지 않는 관조와 절제의 미학을 가진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이 영화가 '잃어버리다'와 '내다 버리다' 사이에서 뭔가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영화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가령 우리가 이사를 갈 때, 이 물건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이 오는데 제 경험에 비춰보면 대개 그런 경우는 버리는 게 맞거든요.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때 굉장히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이 누구나에게 있을 텐데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멀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때 너무 슬퍼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마음을 주면서 느꼈던 감정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MP3라는 물건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고요. 겨울이 배경이라 굉장히 춥고 차가운듯하지만 그 안에 뭔가 따뜻함이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2월 6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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