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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Dec 11. 2022

사랑과 파멸의 끝에서

영화 <본즈 앤 올>(2022)


<본즈 앤 올>은 식인(食人)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매런(테일러 러셀)'이라는 소녀가 등장하는데요. 이 소녀가 사람을 먹는 식성의 인물로 나옵니다. 이런 식성을 가진 사람은 가족을 해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혼자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매런도 18살이 되자마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식성이 똑같은 '리'라는 소년을 만나는데요. 이 소년을 바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 매런과 리가 어떻게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죠.


식인을 소재로 해서 판타지 장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본즈 앤 올>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식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인물로 내세우는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는 공포나 스릴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고요. 앞선 언급처럼 두 인물이 길 위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로드무비의 특성도 있습니다. 길 위의 여정 속에서 매런과 리가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는데, 로맨스의 분위기도 풍기는 영화예요.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식인이라는 소재가 좀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소재가 일종의 거대한 메타포로 기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식인의 식성을 가진 사람은 영화 내에서도 소수자로 그려집니다. 생존하려면 그런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잖아요. 아니면 정말 죽어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식인 정체성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담지하고 있는 집단과 묘하게 연결이 됩니다. 그 정체성은 성소수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차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영화가 아니라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표출하 장르로 볼 수도 있는 거죠.           

   

영화의 제목인 'BONES AND ALL'을 직역하면 '뼈까지 전부 다'라는 뜻입니다. '뼈'라는 것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최후, 불멸, 영원 같은 느낌이 분명히 있잖아요. 사람이 죽고 살점이 다 썩어도 뼈는 남게 되고요. 은혜가 뼈에 새길만큼 커서 잊히지 않는다(刻骨難忘)는 사자성어도 있는 것처럼 뼈는 일종의 영원성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뼈도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요. 한편으로는 사랑의 아주 극단적인 행위 중 하나가 상대를 죽음이나 파멸로 이끄는 것일 텐데요. 이 영화에서 뼈는 죽음과 파멸로 향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아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기호로 사용됩니다.


영화는 식인 식성을 가진 소수자들끼리의 동행 속에서 삶의 희망과 절망의 풍경을 아주 강력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런이 자신의 정체성을 뭔가 부정하는 듯한 말을 계속하니까 리가 "그런 식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거밖에 더 있냐"는 취지로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 말은 삶을 사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굉장히 특수하고 기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 영화가 무엇보다 로맨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두 단어로 말하자면 '사랑'과 '파멸'인데요. 사랑은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 인간을 진창에 빠지게 하거나 소멸시켜버리는 힘도 있거든요. 또 이 영화에서 파멸은 오히려 너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행해지는 일종의 제의(祭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파멸이라는 관념을 식인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로 녹여내고 있는 건데요. 영화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력하기도 하지만 다루는 주제는 너무나 근원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보고 나면 긴 여운이 남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2월 11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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