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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모리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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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주 Apr 11. 2021

세상의 모든 동물

나와 구렁이와 까치


  토요일 정오, 아이와 과일을 먹으며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를 시청했다.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에는 권선징악에 기반한 다양한 전래동화가 나오는데, 오늘은 <은혜 갚은 까치>편을 보았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새끼 까치를 구해주었는데 그날 밤 사람으로 둔갑한 구렁이 아내가 남편 구렁이를 죽인 선비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하자 까치들이 목숨을 바쳐 선비를 도왔다는 이야기다.


  아이는 유독 이 <은혜 갚은 까치>편을 좋아한다. 보고 또 본다. 나도 아이를 따라 만화를 반복해서 보며 갖가지 생각에 잠겨든다. 오늘은 선비가 까치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화살로 쏘는 장면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그럼 구렁이는 배고플 때 어떡하지?"

 -"몰라."

  아이는 대답을 내뱉기도 전에 다음 장면에 빠져들었다. 나는 아이 옆에서 화면을 응시하면서 마음속으로 고민한다.

  '내가 선비라면 까치를 살리기 위해 구렁이를 해쳤을까, 아니면 바라만 봤을까.'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원앙과 고양이가 떠올랐다. 천연기념물인 원앙인 하천에서 1km 떨어진 아파트 18층 보일러실에 알을 낳았다. 9개를 산란한 어미 원앙은 평균적인 포란 기간보다 훨씬 오래 알을 품었다. 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조류학자는 알 9개중 4개는 이미 부패했으며, 나머지 5개의 알 역시 부화 확률이 1%도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원앙은 보일러실에서 며칠 더 머물다가 이소했다. 두 마리 원앙이 18층 높이 둥지에서 무사히 뛰어내렸고, 아기 새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날아온 어미와 함께 하천으로 걸어갔다.


  이 앙증맞고도 아름다운 장면에서 갑자기 길 고양이가 달려들어 아기 원앙 한 마리를 죽였다. 얼떨떨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방송 영상이 캡처된 온라인 게시물에서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갑론을박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 새끼가 부화했는데 하천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제작진이 도왔어야 하지 않냐는 질책부터 새를 재미로 죽이는 고양이에 대한 분노, 고양이 개체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줘서 안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반대로 새를 죽이는 것은 고양이의 본능이며, 원앙을 돕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


  그때 원앙과 고양이를 보며 매듭짓지 못했던 감상이 까치와 구렁이 앞에서 줄줄이 풀어졌다. 나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 귀엽고 약한 동물이나 개체 수가 적은 동물이 생명에 위협을 받고 큰 고통을 느낄 때 얼마나 돕고, 얼마나 방관할 것인가. 그리고 나머지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특정 동물은 인간의 편으로, 다른 동물은 적으로 여기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것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동물 복지와 생태계 보호 그리고 종차별 등 동물에 관한 여러 사설을 찾아 읽었다.


  그 글들을 보며 사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개, 고양이, 소 돼지 닭 뿐만 아니라 구렁이와도 물총새와도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 어떻게 행동할 지 결정하기 전에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속속들이 알고 그들의 생태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알아야 부분 속에서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의 입장이 되어본 후에야 누구의 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애완동물과 농장동물, 몇몇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제외하면 동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자체로 동물을 종차별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앞으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더 많은 동물의 생태를 공부 해야겠다. 나와 구렁이와 까치가 연결된 가느다란 끈을 따라가 때때로 구렁이 방식으로, 때때로 까치 방식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내 삶에도 새로운 영감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는 <은혜 갚은 까치>를 한 번 더 봐도 되냐고 물으며 엄마 눈치를 본다. 나는 도끼눈으로 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책장 앞에 앉아 아이의

자연관찰 책을 꺼내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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