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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아이가 껴안은 것

by 윤선

여덟 살부터 나는 엄마가 없었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깔끔하게, 단정하게 다니라고.

어디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지저분하면, 버릇없으면

엄마 없는 티가 난다고.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머리에 새겼다.

머리도 단정하게, 옷도 단정하게, 손톱도 깨끗하게.

세수할 땐 목도 꼭 닦을 것.

누구에게도 함부로 굴지 말 것.


초등학교 시절, 머리띠를 했던 나는

머리카락이 조금 빠져나오면 그걸 다시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등굣길에 발견한 옷 위에 새끼손톱만 한 얼룩이 신경 쓰여 집으로 돌아와 갈아입었고,

손톱은 늘 바짝 잘랐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토요일마다 실내화와 운동화를 빨았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맞춘 후 가장 먼저 배운 건

셔츠 다림질이었다.

셔츠 두 장을 매일 갈아입었고,

목 부분은 손으로 애벌빨래를 한 뒤 세탁하고,

꼭! 다려 입으라고 당부하셨다.


어느 날 밤, 뭘 하다 정신이 팔렸는지 셔츠 두 벌을 밤늦게야 빨게 되었다.

결국 아침이 되어서도 셔츠는 축축했다.

심지어 다림질도 해야 했다.


다림질을 하려고 일찍 일어났고, 드라이기로 셔츠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1교시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대충 마른 셔츠를 입고 가봐야 지각도 못 면한다.

그럴 바엔 다림질까지 다 해서 완벽하게 가자.’


그렇게 다림질까지 마친 후 2교시에 맞춰 등교했다.

나는 평소에 지각도 안 하는 학생이었기에, 그날 선생님도 아무 말 없으셨다.




아빠께서 늘 우리 남매에게 강조하셨던

깔끔하게, 단정하게, 그리고

어디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그 말씀은

아빠가 세상과 맞서며 만든 방어구였을 것이다.

흠 하나 없어 보여야,

티 하나 없어 보여야

우리 가족이 더는 다치지 않는다는 믿음처럼.


하지만 어린 나는 그 말을

내 몫의 책임처럼 받아들였다.

내가 흐트러지면,

아빠가 욕먹을까 봐.

내가 지저분하면,

내가 버릇없으면,

아빠와 동생이 작아질까 봐.

그래서 더 악착같이 단정하려고 했다.

더 조심스럽고, 더 예의 바르게 굴려고 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하나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나는 매일 머리를 단정히 하고,

손톱을 깎고, 셔츠를 다려 입었다.

누구에게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강박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그 시절 아빠의 말은 내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이 세상 앞에서 흠잡히지 않기를 바랐고,

나는 그런 아빠가 욕먹지 않기를 바랐다.


같은 말을 두고도

아빠와 나는 서로 다른 마음으로 버텼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깔끔해지려 애쓰던

어린 내가 이제는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기특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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