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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을 찬 아빠

셋이기에 완전했던 우리

by 윤선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아빠를 만나자마자

미묘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아빠를 볼 수 있었으니까.


아빠가 수갑을 찬 건 사실,

드라이브 가고, 조개 캐러 가고, 단풍구경도 갔던

아빠의 차에 아직 자동차 할부금이 남아있었고,

배달을 하시며 그 돈을 갚으려던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아 수배가 떨어진 상황에

아빠가 짜장면 배달을 하시던 중, 경찰에 붙잡히셨다.

아빠는 그 순간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날 우리는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도 모르고,

연락이 닿을 방법도 없던 터라 밤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고모가 찾아오셨다.

나는 열여섯, 동생은 열넷.

무슨 이야기든 알아들을 나이였기에

고모께서 차분히 설명해 주셨고,

주말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동생과 초조히 주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고모를 따라 대전으로 갔다.

다음 날, 고모와 함께 아빠가 있는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란 곳은 어린 우리에게 무섭기만 한 곳이었다.


일주일 만에 본 아빠는 많이 마르고,

수염은 까칠해져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두 손으로 우리 어깨를 토닥이며,

“금방 갈 테니까, 고모랑 며칠만 있어"하고 웃으셨다.

나는 아빠 말이라면 다 믿었으니까, 그 말에 마음이 놓였고, 그래서 웃음이 났다.


그제야 흘러내리다시피 한 아빠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벨트가 없었다.


“아빠, 근데 벨트는 어디 갔어?”

“어, 경찰 아저씨가 보관해 준대. 뭐 목매달까 봐, 벨트하고 있으면 안 된대.”


참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시던 아빠.

정확하진 않지만, 정말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는 돌아오셨고, 우리는 이미 행방이 들켰던 집을 떠나,

아빠 친구분의 소개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날 경찰서에서 세 식구가 만났을 때

누구도 울지 않았다.

다시 마주한 서로의 얼굴들 속에서

우리는 울기보다 웃었다.

억지로 웃으려 애쓴 것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빠가 내 앞에 그대로 서 있고,

우리가 여전히 셋이라는 사실 하나에 마음이 놓였던 거다.


사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빠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게 무서워서 밤새 기다렸고, 그게 두려워서 경찰서에 가서 아빠를 만나기까지 숨죽였다.

그리고 막상 다시 마주했을 때, 아무도 울지 않았고,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쩐지 안도감이 먼저 올라왔다.


거의 즐겁기만 했던 내 삶에서,

이 이야기만은 오래 남아 있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슬픈 기억이다.


그저 그날 우리 셋의 웃음은

셋이기에 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지켜갈 수 있겠다는

그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에 나온 것일 테다.


그날을 떠올리면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결코 완전한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

그 순간이 있었기에,

우린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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