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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점한 날에도 괜찮다고

by 윤선


나는 야구를 볼 때면 유독 투수가 외로워 보인다.

실점이 이어지거나, 공이 뜻대로 가지 않을 때

마운드 위의 그 사람이 눈에 밟힌다.

포수는 사인을 주고,

수비수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있지만

그 사이에서 투수는 홀로 서 있다.

그 자리는 어쩐지, 함께 있는 듯하면서도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유독 표정하나에도 눈길이 간다.


타자는 삼진을 당해도 괜찮다.

벤치로 돌아오면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다음에 잘하면 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투수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흔들리는 순간, 벤치에선 교체 준비가 시작되고

잠시 후면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괜히 짠하고,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씁쓸하다.

오늘 저 선수 마음은 어떨까 신경 쓰이고.......

잘 던지고 싶었을 텐데,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무너지는 한순간만으로 모든 책임이 그에게 쏠리는 것 같아서.


아마 그런 장면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건 그 외로움이 익숙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종종 그런 자리에 서 있으니까.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책임 앞에서,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다잡아야 할 때가 많다.


실수할 수도 있고, 잠깐 주저앉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선

“버텨야지” "해내야지" "나 아니면 누가 해"

하는 말이 먼저 올라온다.

그래서 결국은 버티게 되고,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 있는 고요한 외로움이 점점 굳은살처럼 자리 잡아간다.


나는 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나의 그런 순간과 겹쳐 보였던 것 같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그 뒷모습에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문득,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싶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모든 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실수해도 괜찮고,

가끔은 못해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


그 말은 또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 버티느라, 너무 오래 외로웠던 누군가에게.

실수를 두려워하면서도 매 순간 책임져야 했던 사람에게.

지금껏 혼자 중심을 잡느라 애써온 사람에게.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마운드 위에 홀로 서 있는 일 같아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흔들릴 때,

누군가 말해줬으면 하는 그 한마디가 있다.


정말 잘 버텼다고,

정말 잘하고 있다고,

실점하는 날도 있는 거라고,

꼭 이기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나부터 시작해 본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지라도,

혼자서 책임져온 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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