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날의 나는 괜찮지 않았고, 또 괜찮았다.

(2) 다시 살아내기까지

by 윤선

호르몬 수치가 안정되기까지 6개월.

그리곤 다시 괜찮아질 틈도 없이, 당뇨라는 또 다른 진단이 내 마음을 덮쳤다.


쿠싱 수치가 겨우 안정되어 가던 찰나, 나는 또다시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한 번에 오는 걸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한 척 내일부터 당장 주사를 직접 놓아야 한다는 수의사의 말에 집중했다.

다행히 수의사는 말했다.

"그래도 쿠싱이 먼저 안정된 후에 당뇨가 온 건, 오히려 큰 운이에요."

그 말을 붙잡고 또 마음을 추슬렀다. 운이 좋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주사를 놓고, 나도 어느 정도 매일 콩이의 혈당을 관리하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불안이 내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 당뇨성 백내장으로 급격히 실명할 수 있다 ‘는 문장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혹여 콩이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까 봐, 그 생각에 매일이 초조하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당뇨 확진을 받은 바로 그날.

밥을 잘 안 먹는 콩이를 앞에 두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콩이는 응급한 상태로 까딱하면 정말 큰일이 생길 수 있는 상태였고, 나는 꼭 밥을 먹이고 인슐린을 주사해야 했다.

밥을 거부하는 콩이를 두고 울면서 주사기로 강급을 했다.

"제발 좀 먹자, 콩아."

손은 떨리고, 마음은 더 초조해서 그 작은 입에 억지로 밥을 넣으며 나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밥그릇에 고개를 들이밀고 스스로 밥을 먹는 콩이를 봤다.

그 순간, 눈물이 또 쏟아질 것 같았다.

‘얘도 살고 싶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 안에 있던 어떤 벽이 조금 무너지고, 이상하게도 힘이 났다.

나 혼자만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콩이도 자기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하고, 내일이 어떨지 알 수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오늘 내 옆에 있는 콩이를 더 잘 돌보고 싶었다.

무너질 때도 있었고, 다시 일어설 때도 있었고, 그런 마음의 반복 속에서 콩이와 나는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며 나는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삶은 결코 단단하지 않다는 것.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내가 아무리 준비해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스며든다는 것.

하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삶을 책임지고, 오늘 하루를 다해 살아내는 것.


콩이도 그렇게 버텼고, 나도 그 옆에서 함께 버텼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완벽하거나 평온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귀했고, 그래서 더 단단해졌다.


결국 삶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

‘얼마나 완벽하게 사는가’가 아니라,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만의 평온과 충만함을 찾아내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 과정에서 깨닫고, 오늘을 채우는 것.


그날의 나는 괜찮지 않았고, 완전히 괜찮을 수는 없었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 위에 삶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걸, 콩이가 내게 알려주었다.

keyword
이전 06화그날의 나는 괜찮지 않았고, 또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