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여덟, 동생은 열여섯이던 겨울방학이었다.
우리는 셋이서 월세방에 살고 있었고,
아빠는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해서 한 달에 백이십만 원을 벌었다.
그게 얼마나 빠듯한 생활인지, 그 나이쯤이면 알 만한 나이였다.
동생은 늘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바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가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나는 늦은 아점을 먹고 방학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이 말했다.
“누나, 누나 가방 좀 줘.”
내 에어워크 백팩.
물병 두 개면 꽉 찰 아주 작은 가방이었다.
동생은 그걸 받아 들더니 다시 말했다.
“누나 메모지랑 볼펜 좀 줘.”
나는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건넸고,
동생은 뭔가를 끄적이고 안방에 다녀오더니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누나 나 돈 벌어올게. 아빠랑 잘 살고 있어.”
“뭐라는 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어이없어 대충 대답하고 말았지만 동생은 꽤 진지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동생은 저녁밥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더니 저녁 7시 무렵,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누나!! 아빠방 침대 옆에 내가 써둔 편지 좀 찢어서 버려줘! 추워서 안 되겠어. 나 지금 바로 갈게!”
그 말에 나는 냉큼 아빠방으로 향했다.
편지는 침대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삐뚤빼뚤하지만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메모지 한 장.
“아빠 저 윤광이에요. 아빠 혼자 고생하시는데 제가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돌아올게요. 누나랑 잘 지내세요. 건강하세요.”
풉.
참 어처구니없고도, 웃음을 참기 어려운 편지였다.
그날 이후로 동생의 가출 시도는 없었고,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이야기를 꺼내며 동생을 놀린다.
그땐 그냥 철없고 웃긴 해프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열여섯 살짜리가 혼자 그렇게 마음먹고 집을 나갔다는 게, 아니 나갈 시도를 했다는 게, 참 기특하다.
늘 나만 철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만큼은 동생이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
세상 물정은 몰라도,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해보려던
그 다급하고 뜨거운 진심은 지금 생각해도 듬직하다.
그 철없던 가출 시도는, 어쩌면 동생이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보고 싶었던 작고도 단단한 첫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동생에게 여러 가지를 의지를 할 정도로 정말 듬직한 어른이 되었다.
괜히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나 보다.